2013.01.16 18:38


Kenneth J. Collins 

  Power, Politics and the Fragmentation ofEvangelicalism


Ch.4, “Evolution, Intelligence Design and the Transformation of Culture?”





최근에 복음주의 진영에서 창조와 관련되어 제기되고 있는 ‘지적 설계론’(Intelligence Design)이 있다. 이 이론은 단순히 진화론의 대항하는 지적운동으로만 여겨져 왔지만 사실은 복음주의 진영의 학문적, 지적, 문화적 전략이 망라된 운동이다. 즉 오랜 축적물을 바탕으로 진화론에 일종의 쐐기를 박는 쐐기운동으로 학문 활동의 유신론적 대안 운동으로 전개되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케네스 콜린스(Kenneth J. Collins)는 4장에서 지적 설계론과 관련된 사항들을 짚어 가면서 복음주의의 지적 설계운동의 배경적, 사회적, 학문적, 문화적 맥락을 다루고 싶어 한다.  

조지 부시(George Bush) 대통령 당선 이후 복음주의 진영의 정치적인 자산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 종교 비평가들에 의해 기독교 신앙과 공화당 정치 진영의 이상하고 새로운 조합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즉 그 말은 복음주의가 정치적인 영향력이 중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중요한 문화적인 영역에서 발자취가 부족함을 보여주는 반증이다. 또한 복음주의 진영이 아직은 테네시(Tennessee) 데이튼(Dayton)에 있었던 스코프 재판(Scope Trial)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25년에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에 의해서 진화론을 기소한 재판이 스코프 재판이었다. 그리고 재판을 제기했던 그는 깨닫지 못했지만 재판의 지적 배경에는 근본주의(fundamentalism)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었다. 이 근본주의 흐름은 프린스턴 학파로 불리던 찰스 하지(Charles Hodge), 워필드(B. B. Warfield)의 유산뿐만 아니라 더 거슬러 올라가 청교도적, 개혁주의 지적 흐름에 맥을 잇고 있었다. 

진화론을 최초로 심판대에 올렸던 이 스코프 재판은 ‘원숭이 재판’(monkey trial)이라는 오명과 함께 근본주의 진영의 실패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 몇 차례에 걸쳐 진화론에 관련된 재판이 있었다. 예를 들어, 에퍼슨(Epperson) 재판에서는 창조론(creationism)을 진화론과 함께 가르칠 수 있도록 청원을 했고,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도버(Dover)에서 ‘지적설계론’을 9학년의 과학교육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청원운동을 하였다. 물론 이후에 이어진 재판에서 진화론은 제외한 창조론이나 지적 설계론이 정규 과학적 교육 커리큘럼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 때문에 지적 설계론을 단순히 스코프 재판의 후임자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적 설계론은 진화론을 겨냥한 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발전된 과학 중에 하나이다. 


1. 네오다윈주의(Neo-Darwinism)로써의 진화론과 수용자들

제리 코인(Jerry Coyne)은 현대 진화론(네오다윈주의)을 이해하기 위한 여섯 가지 중요한 요소를 제시했다. 1)진화, 2)점진론(gradualism), 3) 종의 분화, 4) 공통의 조상, 5) 자연선택설(natural selection), 6) 진화론적 변화의 비선택적인 구조(nonselective mechanism)가 그들이다. 이에 반해서 앨빈 플랜팅가(Alvin Plantinga)는 복음주의적 철학가로 진화론에서 가르치고 있고 다섯 가지 공통 요소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1) 지구는 매우 오래 되었다. 2) 생명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진화되었다. 3) 생명은 공통의 조상을 가지고 있다. 4) 진화의 단계는 자연주의적 용어로 이해되어야 한다. 5) 신의 개입이 없이 무생물적인 요소에서 생명이 발생하였다. 특히 진화론자들은 유신론자들을 비판하는데, 가장 중요한 비판 지점 중에 하나가 ‘생명은 오래되었다’는 개념에서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최근의 지적설계운동을 전개하는 마이클 베히(Michael Behe)나 윌리엄 뎀스키(William Dembski)도 ‘생명 그 자체가 매우 오래되었다’는 것에는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네오다윈주의자들 역시 애초 다윈(Darwin)이 주장했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다. 다윈은 적자생존을 통한 적응을 위한 변화와 ‘자연선택’과 유전적인 돌연변이(mutation) 등과 같은 자연에 의한 선택의 다양성을 제시했다. 물론 네오다윈주의 돌연변이가 진화의 동력이라는 것과 다윈의 여타 개념들을 수용했다. 하지만 리처드 도킨슨(Richard Dawkins)은 자연선택은 축적된 과정(cumulative process)이며 진화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산악인 한 번에 산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한걸음, 한걸음 산을 위해 올라가는 과정이 진화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적자생존과 같은 자연선택은 오랜 과정의 결과라는 수정을 가한 것이다. 

또한 네오다윈주의자들은 진화에서 기본적으로 목적론적인 관념(목표의 지향성)을 배제시키고 있다. 오직 도구적이며, 물질적인 인과관계를 인정하려고만 든다. 하지만 적어도 산의 정상을 향해 걸어가듯이 정상은 일종의 그 여정의 목표, 목적으로 기능하고 있다. 다윈은 결코 자연이 목적을 가지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면서 선택하는 존재라고 보지 않았다. 네오다윈주의의 중요한 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와 빅터 스텡거(Viktor Stenger)는 인간은 우연의 산물이지 전통적인 신학이 말한 특별한 창조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진화는 발전이라는 목적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유신론적 진화론(theistic evolution)에는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와 월리엄 뎀스키가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이들은 창조주로써의 하나님을 인정한다. 그 나머지는 진화론의 설명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콜린스는 칼 깁버슨(Karl Giberson)은 지적 설계론과 자신들과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즉 기본적으로 우주는 지적인 설계에 의해서 세워졌으며, 지적 설계론과 매우 유사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성경을 기반으로 한 연구기관인 바이오로고스(BioLogos)의 목적과도 유사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우주의 모든 배경 뒤에는 그것을 만든 정신(mind)가 있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신은 자연적 진화의 배후가 되는 존재로 ‘무작위적인 설계자’(Random Designer)이다. 무작위적인 신은 돌연변이와 이어지는 자연적 선택을 용인하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자신들의 종교적인 신앙과 과학이 완벽하게 양립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문제점이 있다. 과연 신에게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즉 ‘무작위의 설계자가 있다는 것과 설계자가 없다는 것과는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에 말끔하게 대답을 하지 못한다. 또한 이들이 말하는 무작위적인 설계자라는 용어는 순수하며 단순하게 과학적이지 못한 신학적 수고에 가깝다는 점에서 과학계와 교계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 다르게 네오다윈주의자들은 유전적인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은 충분한 설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무작위적인 설계자’처럼 논리에서 불필요한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한 이론은 ‘오캄의 면도날’(Occam’s razor)의 논리를 들어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여긴다. 즉 단순한 설명이 가장 좋은 설명이며 참에 가까운데, 굳이 무작위적인 설계자를 설명논리에 끼워 놓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들은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이론이 맞다 손 치더라도, 그러한 신은 매우 ‘게으른 신’(deus otiosus)이며, 숨어 버린 신으로 결국은 존재하기를 멈춘 신이라고 본다.


2. 지적 설계론과 그에 대한 비판 

이런 과학계의 흐름 속에 1980년대에 등장한 이론이 바로 지적 설계론이다. 다시 말해 기존 생물학에 대한 반감과 진화론에 대한 불만족에서 시작된 운동이었다. 지적 설계론자들은 우주와 생명 그 자체가 충분한 증거를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초자연적인 설명에 기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뎀스키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연적인 원인’과 ‘지적인 원인’ 사이에 분명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지적 설계론은 지적인 인과론에 초점을 맞춘 설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단순히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유대교, 이슬람, 세속주의 유대교, 무신론자 그리고 심지어 반신론자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적 설계론이 결코 하나님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물론 전략적인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지적 설계론은 다음과 같은 지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다. 이 운동이 단순히 다윈주의의 반대가 아니라 생물학적 관심에서 시작된 것이고, 나아가 문화적인 영역까지 확대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경험적인 근거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는 지적인 움직임이고 싶어 한다. 사실 진화론은 경험적인 근거가 미약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예컨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설은 생명의 발전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필립 존슨(Phillip Johnson)은 자연선택설은 이미 존재한 것을 보존하거나 파괴시키는 외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돌연변이 역시 종의 다양성을 만들어 가는 것에 있어서 매우 제한적인 영향만을 주었다. 다시 말해 자연선택설과 돌연변이의 등장은 모든 것을 설명해내는 ‘마법의 총알’(magic bullet)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이클 베히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라는 개념을 가지고 진화론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일찍이 다윈의 그의 저서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에서 ‘어떤 완벽한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자신의 이론은 무너질 것이다’고 했다. 베히는 환원불가능한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박테리아 편모의 모터(motor) 시스템을 설명하면서 그 증거를 제시한다. 즉 나선형 모양의 타입III의 분비 시스템을 가진 편모는 환원불가능한 완벽한 구조를 보여 준다. 그래서 진화된 것이 아니라 이미 완벽한 구조를 가진 존재라는 것이다. 박테리아 편모의 모터 시스템은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진화적 단계가 경험적인 증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해 메운 것임을 보여주는 예증이 된다.

윌리엄 뎀스키는 철학과 수학 분야에서 박사를 취득한 복음주의 학자이다. 그는 전공을 살려서 복잡한 구체적 정보를 통해 진화론이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비판한다. 예컨대, 우발-복잡성-구체성=설계라는 논리의 필터를 통해서 진화가 말하는 논리의 허구성을 짚어 내고 싶어 했다. 그는 지적 설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학 또는 복음주의적 믿음이 아니라 수학과 정보 이론과 통계를 통해서 논리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진화론은 어떤 생물학적 또는 세포학적 이해를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오직 다양한 가능성을 희망적 숙고를 토대로만 만들어진 공상의 논리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경험적이고 통계적인 증거가 아니라 무한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이론이라고 본 것이었다. 

「와이어드」(Wired)의 수석 편집인인 크리스 앤더슨(Chris Anderson)은 ‘진화론을 신뢰한다고 해도 왜 살아 있는 생명세계가 그렇게 존재하는지 진화론은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연선택설은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연극의 모든 문제가 해결 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에 신이 나타나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의 방법을 뜻한다)와 같은 존재라고 비판한다. 케네스 콜린스는 그런 면에서 서구 과학이 ‘방법론적 자연주의’(methological naturalism)을 바탕으로 지적 설계론을 비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종교든 현대 과학이든 의심하는 것을 태생적으로 약하게 갖고 있다는 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방법론적인 자연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지적 설계론은 두 가지 약점이 있다고 본다. 먼저 지적 설계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과학적 방법이라고 강변하지만 첫 번째 원인으로써의 ‘설계’를 이미 상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과학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고 본다. 둘째, 지적 설계론은 현대 과학이 말하는 과학적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즉 설계와 목적이라는 전제를 제시함으로써 과학이 아닌 신학 또는 형이상학적 철학에 다름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럴까? 이미 언급했듯이 네오다윈주의자들은 지적 설계론이 형이상학과 목적론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방법론상의 문제를 강하게 제기한다. (지적 설계론이 최소한 하나님에 대한 주제는 상정하지 않으므로 이것까지 비판으로 삼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적 설계론은 과학이 아닌 종교이며 상상 문학에 지나지 않는다고 메드워(Medwar)는 비난한다. 뿐만 아니라 과학은 학문의 중립성과 객관성을 들어 학문적 태도를 비판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에서 현대 생물학자들은 자유로울까? 불행히도 현대 생물학 역시 자신들에 대한 비판 받기를 싫어한다. 아니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피하려고 무지 애쓴다. 그리고 비판에 대한 응답으로 자주 자신들의 ‘교조적인 관점’으로 견지하고 있다. 그것은 객관적이지도 공정하지도 않고, 나아가 비판에 열려 있지 않는 학문 공동체를 보여주지도 못한다. 과연 이들은 자신들이 제기한 방법론적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것일까?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현대 과학자들은 지적 설계론이 ‘형이상학적 자연주의’(metaphysical naturalism)이라고 비판한다. 물론 이 용어는 방법론적 자연주의와는 반대적 의미를 가진 개념이다. 즉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는 자신들의 세계관에 경도된 철학으로 학문적 전제 조건으로 설계와 목적을 제시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지적 설계론은 시초에서부터 ‘설계’로 시작하고, 마지막은 ‘목적’을 제시하기 때문에 과학일 수 없다고 본다. 역으로 필립 존스는 그렇게 비판하는 과학자들 역시 이미 철학적 관념을 자신들의 학문성에 강하게 배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이 가장 과학적인 방법론이라는 ‘방법론적인 자연주의’ 역시 형이상학적 가정(신은 없다)을 이미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자신들의 과학적 교리(doctrine)에 벗어나는 어떠한 비판도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런 면에서 다윈주의 역시 매우 형이상학적이며, 교리적인 자세이다. 다시 말해, 과학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과학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 근거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지적 설계론에 대한 비판에 네오다윈주의자들은 집착하는 것일까? 네오다윈주의자들의 거의 대부분은 무신론자들이며, 반신론자이기도 하다. 이런 언급이 있다. ‘진화론은 반신론자들이 발견한 가장 위대한 동력(engine)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진화론이 공격 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적 설계론과 진화론의 문제는 진위의 문제이기 보다는 좀 더 권력(power)의 문제에 가깝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적 설계론자들의 전략이 필요하다. 지식의 배제와 진위여부는 바로 권력이 창조해낸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 역시 문화적 전략을 가지고 접근하려고 한다. 내부에서의 정보 교환에 만족하지 않고 법정 투쟁을 벌이면서 자신들의 정당성과 관심을 얻으려고 한다. 또한 과거 자신들이 배제했던 우파인 창조주의자들과 좌파로 볼 수 있는 유신론적 진화론자들까지 모두를 아우르려고 노력한다.     


2013.01.16 18:35




“1960년 이후 샤머니즘 연구의 변화”

  • 엘리아데의 샤머니즘연구와 네오샤머니즘을 중심으로-





  1. 들어가는 말

과거 샤머니즘은 시베리아 지역에 한정된 매우 이상하며 비정상적인 종교라고 취급받아 왔다. 사실 종교라고 여겨지지도 않았고, 미신 또는 후진적인 문화습성이라고 여겨졌다. 이러한 평가도 다음의 평가에 비하면 박한 것이 아니었다. 더 심한 평가는 시베리아 지역의 기후 특성이 반영되어진 정신 병리학적 현상으로 본 것이다. 쉽게 말해 시베리아 지역에만 나타나는 정신병의 일종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저술과 여러 학자들의 학문적인 연구와 책을 통해서 그것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이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샤머니즘의 평가와 대우가 그렇게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데 접어들면서 히피문화(Hipi)와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이 격화되었던 시절이었다. 오랫동안 잊어 왔던, 아니 관심조차 없었던 샤머니즘에 대한 재평가가 적극적 이루어졌다. 

이 시기 이후로 북미 지역(North America)에서 과거에 비해 샤머니즘(shamanism)에 대한 관심이 많이 증폭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인 요인들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이 글의 분량에도 넘치거니와 이미 설명하는 논문이나 책이 나와 있다. 오히려 이 글에서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북미’라는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변화에 주목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 변화의 원인이 된 것은 1960년대에 새롭게 영문으로 출간된 엘리아데의 『샤머니즘』(Shamanism)과 네오샤머니즘(neo-Shamanism)의 인기와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 글은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이해와 네오샤머니즘을 설명하고 문제점을 짚어 보려고 한다. 

논의를 보다 간결하게 이끌기 위해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네오샤머니즘, 이 둘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와 같이 나누어서 살펴 볼 것이다. 먼저 엘리아데의 샤머니즘에서는 개괄적으로 정리한 뒤에 문제가 되는 쟁점을 다룰 것이며, 네오샤머니즘에서는 이것이 나오게 된 사회적, 사상적 정황을 본 뒤에 주요한 개념들을 설명하려고 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이 둘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점들을 짚어 보고 개인적인 평가를 해볼 생각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1960년대에 일었던 샤머니즘의 인기의 실체와 그 한계를 짚어 보고 앞으로의 샤머니즘을 가늠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2.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1)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샤머니즘』(Shamanism)은 1974년에 영역본이 나왔다. 그런데 이 영역본은 1945년의 출판 된 프랑스판 『샤머니즘』 (Le Chamanisme et techniques archaïques de l’extase)을 번역한 것이었다. 이 말은 샤머니즘에 대 한 엘리아데의 연구는 1940년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연구는 아직도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정도로 시대를 앞선 선도적 연구였다. 게다가 단행본 820편, 논문 자료 970여 편을 참조하여 수행한 방대한 자료들을 참고 있으며, 또한630페이지에 달하는 한마디로 거대한 작업이었다. 그의 이런 노고는 《샤머니즘》을 우리 시대의 샤머니즘에 관한한 최고의 고전으로 자리 잡게 하였다. 먼저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연구를 훑어보면서 성과와 한계를 지적하여 논의를 이끌어 보고자 한다.  

물론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엽적인 문제일 수 있으나, 몇몇 자료는 직접 조사가 아니라 자료에만 의존하다가 보니까 부실한 자료를 가지고 한국 무속에 대해 ‘남방적인요소’라는 다소 애매한 표현을 했다. 무엇이 남방적인 요소인지 그리고 그 판단 근거가 무엇인지 전혀 언급이 없었다. 또한 ‘여무가 우세한 것’을 두고 ‘샤머니즘의 쇠퇴의 징후’이거나 ‘남방의 영향’이라는 평가는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언급이었거나 섣부른 결론이었다라고 비판할 여지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샤머니즘』이 지금도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엘리아데의 연구가 그 이전의 선행 연구들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이전의 연구들이 선교사들의 자료 수집, 나열과 민족지학(ethnography) 의 문화기술이거나 심리학, 사회학, 민속학자들이 소위 진화론에 입각한 연구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엘리아데는 이전의 연구의 성과물들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샤머니즘 이론을 정립하고자 했다. 엘리아데는, 1) 샤머니즘이 기성 종교적인 성격을 부정하고, 2) 샤머니즘의 본질을 샤먼(shaman)의 공연성 또는 굿(sēance)와 결부된 영적인 기술에 국한함으로써, 3) 샤머니즘이 시베리아의 고유한 문화전통이 아닌 인간의 영적인 특성의 원형으로 제시했다. 즉 종교학자로서 샤머니즘을 단순한 지역적인 역사자료라는 편협한 시각을 통해서만 보면 안 되며 오히려 깊은 의미를 해석하고 해독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샤머니즘을 시베리아의 지역적인 문화특성이 아니라 범지구적이고 보편적인 종교현상으로 해독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은 그의 해석학적 틀로 인해 가능했다. 즉 샤머니즘을 종교적 인간(homo religious)이라는 ‘해석학적 전제’를 가지고 세계인류가 경험하는 원형적인 정신문화로 볼 것을 주문했던 것이다. 이러한 엘리아데의 연구 업적은 샤머니즘을 흔히 지칭하던 이교주의(paganism)을 대체하는 긍정적인 용어로 환영을 받았다.

  2) 엘리아데의 세 가지 쟁점

엘리아데의 샤머니즘엘리아데의 샤머니즘을 본격적으로 평가를 위해 그에게 나타나는 샤머니즘의 쟁점에 대해서 몇 가지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첫째, 샤먼의 정의문제이다. 엘리아데는 “탈혼망아의 체험을 통해서 교도를 치유하고, 사자를 명계로 인도하고 그들과 천상계 및 지하계에 있는 크고 작은 신들 사이에 중보자(mediator)로 봉사하는 사람이 바로 샤먼이다”라고 언급한다. 즉 샤먼은 ‘엑스터의 기술’(technique of ecstasy)을 통해 천계상승이나 지하계 하강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엑스터시 전문가인 셈이다. 이 기술을 통해 악령이나 질병과 싸울 수 있는 특수화된 특기자이기도 하다. 엘리아데는 그러면서 샤먼을 엑스터시 경험(ecstasy experience)을 통해 고귀한 종교적 체험을 얻는 접신의 전문가이기도 하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면모는 여타의 종교 전문가와 분명하게 구분된다. 또한 엘리아데에 의하면 샤먼은 영신(spirit)과의 관계에서도 정의된다고 보았다. 즉 샤먼은 결코 ‘영신들에 의해서 빙의(possessed)되지 않으며’, 영신들의 ‘도구(instrument)로 전락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물론 빙의되는 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특별한 설명이 필요한 매우 드문 사례라고 말한다.후에 언급하겠지만 그렇다면 탈혼이 아닌 빙의가 된 경우를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엘리아데의 평가와는 다르게 많은 나라에서 빙의된 샤먼의 모습이 등장한다는 점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둘째, 시간성의 문제이다. 엘리아데가 샤먼을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엘리아데는 샤머니즘을 이렇게 정의한다. “고대의 접신술(the archaic techniques of ecstasy)-신비주의인 동시에 주술이자 넓은 의미의 종교”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고대는 영어의 ‘ancient’라는 시간적 의미의 단어가 아니라 ‘archaic’이라는 ‘시간상의 개념’이 아니라 ‘원초적’ 또는 ‘원형적인’의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엘리아데가시베리아의 공간성을 뛰어 넘으려고 했던 것만큼 주목했던 것이 바로 “시간성”의 문제였다. 그는 샤머니즘을 현대에서도 그 영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살아 있는 의미를 주목하려고 했던 것이다. 즉 과거의 한 때에 존재했던 종교현상이 아니라 지금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존하는 영성적인 의미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잘 담지하고 있는 종교현상이 바로 샤머니즘이라고 파악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엘리아데가 샤먼을 이상적인 존재, 지고하고 순수한 종교적인 전문가로 본 것만은 아니다. 저널리스트인 클라우드앙리 로케(Claude-Henri Rocquet)의 대화집인 『미로의 시련』 (L’épreuve du labyrinthe)에서 엘리아데는 “샤먼은 공동체의 영적인 안내가자 되기 위해서, 공동체를 교화하고 안심시키기 위해서 안 보이는 것을 표현하기도 해야 하고, 속임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엘리아데가 샤먼을 순수하고 원초적인 종교 전문가로만 표현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럼에도 샤머니즘 속에서 원형적인 것에 대한 기대가 묻어 있다. 그는 분명히 샤머니즘을 통해 비역사적이고 시간과 관련이 없는 성스러움의 의미와 구조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아데는 샤머니즘을 ‘고대의 접신술’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즉 시간성을 뛰어 넘어 원초적인 성스러움을 다시금 재현하게 하는 엑스터시, 접신의 기술이라는 틀에서 보려고 했다. 

셋째, 보편성의 문제이다. 엘리아데는 정말 ‘백과사전(encyclopedia)식’으로 다양한 샤머니즘의 경우들을 예를 들고 있다. 그가 예를 들고 있는 샤머니즘은 우리에게 샤머니즘의 원형을 제시하는 시베리아에서 북미, 남미, 동남아시아 그리고 유럽, 고대 그리스까지 그 역사적 층위와 지역적 범위가 깊고 다양하다. 즉 엘리아데는 샤머니즘이 범세계적인 보편적인 문화현상, 영성(spirituality)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정말 백과사전처럼 다양한 사례들을 들고 있다. 문제는 구조적인 유사성에 기대어 외연의 끊임없는 확대는 가지고 왔지만, 정작 문제는 구조적으로 확대된 큰 틀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샤머니즘의 개념적인 혼란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에 대한 비판들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즉 백과사전식 나열이라는 주장과 너무 개념 설정이 모호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3. 네오샤머니즘(Neo-Shamanism) 

  1) 네오샤머니즘 형성의 사회적, 사상적 상황들

1960년대는 새로운 영성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던 시기였다. 히피문화로 대표되는 기존질서에 대한 반항과 도전은 서구유럽 문화 속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을 증폭시킨 시기이도 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 맞물려 샤머니즘에 대한 관심도 과거에 비해 관심의 폭과 깊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이 관심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네오샤머니즘”(neo-shamanism)일 것이다. 네오샤머니즘은 단어 그대로 과거의 종교와 연구 대상으로써의 전통적인 샤머니즘과는 분명히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서구인들의 지적 호기심이나 새로운 영성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대안적인 문화 또는 종교 운동으로 단순히 연구의 객체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 얻어진 점에서 궤를 달리한다. 예를 들어 샤먼의 역할을 중심으로 볼 때에 과거의 샤머니즘이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성 내지는 집단의 통합이 중시되었다면 네오샤머니즘은 개인이 강조되는 개인성의 측면에 기대어 있다. 관심의 출발점 역시 개인적인 영성의 강조라는 점에서 과거의 샤머니즘과는 구별되는 지점이 있다. 앞으로 논의되겠지만 이러한 출발점의 차이는 네오샤머니즘의 한계와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했다. 여기에서는 네오샤머니즘에 대해 논의를 해보도록 하자. 

1964년의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영어판 발행이 학문적 영역에서의 샤머니즘에 대한 관심을 폭증시켰다. 그의 성과였다면 샤머니즘이 시베리아의 지역적 종교현상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위치를 격상시켰다는 점이다. 이런 엘리아데의 성과물위에 인기 작가로 자기 매김 된 카스타네다(Carlos Castaneda)의 『돈 주앙의 가르침, 요기 방식의 지혜』(The Teaching of Don Juan: The Yaqui Way of Knowledge)라는 저술이 큰 관심을 얻으면서 샤머니즘이 대중적인 영역까지 외연을 확대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학문성에서는 엘리아데의 역할이, 대중성의 확보라는 측면에서는 카스타네다의 역할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이들의 저술들이 네오샤머니즘 형성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1960년대의 시대적 상황이 엘리아데와 카스타네다의 역할에 힘을 실어 준 것은 분명하다. 특히 카스타네다의  『돈 주앙의 가르침, 요기 방식의 지혜』은 네오 샤머니즘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저술이 왜 이토록 많은 반향을 일으켰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회적, 문화적 정황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존의 전통들이 젊은이들의 고민과 삶에 대한 답변을 주지 못하게 되면서 전통사상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은 분명했다. 특히 계몽주의로 대변되는 합리주의, 진화론적 사고는 인간을 총체적인 존재로 보려고 하는 감성적이며, 영적인 문제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지 못했다. 서구의 모더니티(modernity)의 문화적, 종교적 지체 또는 정체는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베이비부머 세대(babyboomer)에게 자신들이 타자화 시키고 소외 시켰던 가치에 대한 재발견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여기에 새장을 열어 준 것이 바로 동양에 대한 관심이었고, 그 중 한 갈래가 샤머니즘을 새로운 대안적인 영성으로 받아들이려는 사회적 분위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샤머니즘은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잊고 있었던 것에 대한 재발견이며, 서구인들의 취향에 맞는 취사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여기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이 논의는 나중에 종합적인 평가를 할 때에 다루도록 하자. 

특히 예술, 문학, 영성에서 샤머니즘에 대한 역할은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여기에는 사회적, 사상적 정황이 분명하게 있다. 과거 19세기 낭만주의의 문학과 예술에서 비합리적이며, 독특하며, 개인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었는데, 그들의 사상적인 후예인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과거 모더니스트들에 의해서 폐기 되었던 초자연적이며, 비정상적인 것들에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즉 쉽게 해답을 제시해주던 부모 이전 세대로부터 이어져 오던 익숙한 종교들(dwelling spirituality)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면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영성(seek spirituality)에 맞는 새로운 영성(new spirituality)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영성의 추구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벗어나 동양종교의 재발견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서구 사회의 제도적인 종교 속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했던 당시의 새로운 세대들에게 인도의 힌두교, 티베트의 불교, 동양의 종교들이 소개되면서 개인의 영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났다.샤머니즘의 커진 관심은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 뿐만 아니라 대학과 연구소 등에서 샤머니즘의 강의와 커리큘럼, 그리고 연구가 확대되면서 그 양과 폭을 더 넓히게 된다. 특히 대안문화와 동양종교에 연구에 핵심에는 캘리포니아(California)에 있는 캘리포니아 통합연구소(California Institute of Integral Studies)와 에살린 연구소(Esalen Institute)등이 대표적이다. 에살린 연구소의 경우는 최초로 샤머니즘이 관련된 최초의 임상실험, 드라마 테라피(therapy), 요가와 같은 동양의 영적인 기술들을 소개하고 계발하였다. 여기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한 명사들이 바로 알렌 와트(Alan Watt), 헉슬리(Aldous Huxley), 칼 로저스(Carl Rogers), 매슬로(Maslow) 등이 그들이다. 이들에 의해서 비의적인(esoteric) 종교들이 연구되어졌으며, 대안적인 영성들에 검토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기대와 전망 속에 등장한 것이 바로 미국 원주민들이었던 인디언(native Indians)의 샤머니즘이었다. 대안을 찾던 많은 사람들에게 북미 샤머니즘은 새로운 개척지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철학적 사조와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은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2) 네오샤머니즘(Neo-Shamanism)

이미 앞에서 네오샤머니즘이 태동하게 되는 사회적, 사상적 상황은 언급하였다. 여기에서 덧붙어 한 가지만 더 언급하고 주제로 넘어가려고 한다. 네오샤머니즘의 많은 반향을 일으켰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연구태도라고 볼 수 있다. 과거의 학자들은 객관적이라는 명목 하에 관찰적인 기술(descript)에 그쳤다. 반면에 카스타네다는 간단히 이렇게 주장했다. ‘샤먼이 되지 않고는 샤머니즘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이런 생각은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학자들에게서도 공감과 동의를 이끌어 내었다. 즉 객관적인 연구라는 틀 속에서 샤머니즘의 연구가 한걸음 걸어 나와 종교적 경험과 삶이이라는 실제적인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전환되는 부분에 네오샤머니즘이 서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네오샤머니즘은 학문적 관심이 아니라 종교 그 자체가 어떻게 현대사회에서 변형을 하면서 생존해가는 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거의 샤머니즘이 학문의 틀 속에 갇힌 것이었다면 네오샤머니즘은 그것을 깨뜨리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구별점이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네오샤머니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몇 가지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네오샤머니즘은 서구인들(European)에게 특히 북미인들(North Americans)에게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도 의미, 초월 그리고 대체 치료(alternative healing)와 같은 새로운 영적 추구를 하던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졌다. 그렇다면 의미, 초월, 치료라는 주제를 통해서 네오샤머니즘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세계를 이해하는 ‘의미’(meaning)의 문제이다. 전통적인 샤머니즘이 세계를 이해하는 인식론이 ‘이원론적’(dualistic) 구조라고 한다면 네오샤머니즘은 ‘범신론’(pantheistic) 또는 ‘일원론적’(monistic) 구조로 보고 있다. 달리 말하면 우주론인데 네오샤머니즘에 의하면 세계는 ‘직감적’(sentience)이고 ‘상호연결’(interconnectedness)로 투과된(permeate) 우주(the universe)라고 보고 있다. 예컨대 전통적인 샤머니즘이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도 가지고 있었다면 네오샤머니즘은 선과 악이라는 도식을 갖고 있지 않다. 또한 전통적인 샤머니즘에서 지식(knowledge)는 영들(spirits)에게서 얻는 것으로 믿어져 왔는데 네오샤머니즘에서는 내적인 지혜, 목소리(inner wisdom, voice)와 같은 안에 있는(within)에 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네오샤머니즘에서는 그렇게 되면 결국 샤먼의 역할이 달리질 수밖에 없다. 즉 종교 전문가로써의 공동체를 위한 샤먼의 역할은 축소되고 개인적 차원의 내적인 지혜를 끌어내고 알게 해주는 영적인 조언자 또는 안내자로써의 샤먼 역할만을 인정하게 된다.  

둘째, 초월(transcendence)에 관련된 문제이다. 물론 여기에서 논의하는 것은 신관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초월적 여행, 엑스터시나 트랜스 상태에서 샤먼이 천계여행을 논의하려고 한다. 전통적인 샤머니즘이 영적인 존재들의 세계로의 여행, 즉 명계로의 여행에 집중되어 있고, 샤먼 역시 천계여행 또는 명계여행의 전문가라도 볼 수 있다. 엘리아데의 표현을 빌리자면 엑스터시의 기술(techniques)을 통해 초월적 여행의 전문가인 셈이다. 여기까지는 전통적인 샤머니즘에서의 초월에 관련된 것이다. 반면에 네오샤머니즘에서 샤먼은 모든 지혜를 가진 신비사제(hierophant), 신비가(mystics), 지구의 보호자(guardian)이다. 그래서 자신이 명계로의 여행을 시도한다기보다는 영들(spirits)을 불러내는 것에 그 중점을 두고 있다. 예컨대 엑스터시(ecstasy)나 트랜스(trance) 상태에서의 명계 여행보다는 제의(ritual)이나 다른 기술(other techniques)을 통해서 영들을 불러낸다. 그러니까 초월적인 여행이나 초월적인 것에 대한 관심 자체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의 샤먼은 엑스터시 전문가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영매(’spiritualistic medium)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다르다. 

셋째, 치료(healing)와 관련된 것이다. 샤머니즘은 기본적으로 치료와 관련되어 있다. 최근의 논문 중에서도 치료를 샤먼의 종교적 수행으로 보고 시베리아, 북미, 아프리카, 아시아 전역을 치료라는 샤먼의 역할을 매개로 보편적인 현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두말 할 것도 없이 네오샤머니즘의 중요한 관심이 바로 치료에 관련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대안적 문화에서 시작하여 대체 치료법과 같은 치료에까지 관심의 폭이 넓혀졌다. 특히 북미 인디언의 샤머니즘에서 샤먼을 ‘약초의 사람’(medicine men)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샤먼은 약초나 다른 영적인 기술들을 통해 환자를 치료하기도 한다. 치료에 대한 관심은 북미를 넘어 유럽에까지 네오샤머니즘의 영역을 넓히는 데에 기여했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샤머니즘이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천계로 가서 병의 근원이 되는 영을 만나거나 문제를 해결하여 낫게 했다면, 네오샤머니즘은 약초나 다른 기술들을 통해 병을 낫게 한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구별된다고 하겠다.

이상과 같이 우리는 네오샤머니즘의 특징에 대해 몇 가지로 살펴보았다. 네오샤머니즘은 분명히 학문의 영역을 넘어 실제적 종교적 실천이라는 측면과 현대사회에 맞게 종교적 기능을 한다는 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샤머니즘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면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네오샤머니즘은 그것이 진정한 샤머니즘의 본질을 지닌 것이냐 하는 질문을 가지게 하는 한계점도 또한 노출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 다음 주제에서 논의해보려고 한다.   



3. 엘리아데의 샤머니즘과 네오샤머니즘에 대한 평가

  1)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우리는 위에서 간단히 세 가지의 주제 안에서 엘리아데의 샤머니즘을 정리해 보았고, 문제점을 간단히 짚어 보았다. 세 가지 주제의 문제란 샤먼의 정의, 시간성 그리고 보편성의 문제들이다. 이들 문제점에 대해서 더 평가를 해 보면 이렇다. 먼저, 샤먼의 정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빙의(possession)와 탈혼(trance)의 양자이다. 왜냐하면 엘리아데는 빙의의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빙의의 경우는 한국 무속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샤먼인 무당에게 몸주신인 귀신뿐만 아니라 조상신들이 들어와서 빙의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드문 경우가 아니라 너무나 흔하다는 것이다. 엘리아데 역시 그의 책에서 만주 퉁구스족의 이야기를 통해서 ‘영신이 몸에 들어와 샤먼이 바닥에 쓰러지고 공수를 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물론 본인은 드문 경우라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둘째, 시간성의 문제에 관한 것을 말하자면, 이렇다. 엘리아데는 ‘창조적인 해석학’을 통해 신화-종교 자료에 대한 초역사적인 의미를 언제나 읽어 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초역사적인 의미란 비역사적이고, 시간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종교는 시간성 안에서 존재하고 있는 지극히 역사적인 실체이다. 다시 말해 역사와 사회적 환경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종교현상이라는 사실이다. 엘리아데 본인도“모든 종교가 그 기나긴 내적 변화의 과정을 겪은 뒤에 결국 자율적인 구조를 전개”라면서 “종교 전통의 모든 요소-가장 본질적인 요소-의 개조, 갱신, 회복 그리고 통합이 있을 뿐이다”고 언급한다. 물론 엘리아데의 방점은“가장 본질적인 요소”일 것이다. 과연 갱신과 회복의 끊임없는 반복일까? 아니면 전혀 새로운 종교적인 현현은 없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보편성의 문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엘리아데도 이전 연구가들과 마찬가지로 분명히 시베리아를 염두에 두고 있다. 즉 시베리아가 고대적 종교성의 원형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엘리아데가 샤머니즘을 시베리아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종교현상으로 평가하고 있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해석은 언제는 보편적인 구조를 통해서 해독해야 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엘리아데에게 있어서 종교현상은 지역적이며, 역사적 환경에 환원된 존재가 아니라 종교적 인간(homo religious)이 경험하게 되는 보편적인 종교 경험이다. 즉 샤머니즘 역시 범세계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인간은 태고의 종교적 원초성을 각자의 환경과 역사적 경험이 다르긴 하지만 여전히 기억되고 지켜지는 보편적인 현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엘리아데의 학문적 성과물들은 샤머니즘에 대한 새로운 물꼬를 튼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위에서 지적한 것 외에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연구는 큰 문제점을 지닌다. 왜냐하면 그의 연구는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 큰 약점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변화하고 있는 종교로써의 샤머니즘의 역동성을 간과하는 면을 가지고 있다. 샤머니즘의 의미와 구조를 알았다고 해서 살아있으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면 새로운 모습을 갖고 있는 종교의 면모를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논의는 자연스럽게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의미를 주고 있으면 종교적 수행이라는 측면을 지니고 있는 네오샤머니즘에 논의했다. 사실 네오샤머니즘의 장점은 엘리아데의 한계가 될 것이고, 반대로 엘리아데의 장점은 네오샤머니즘의 문제점을 노정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네오샤머니즘에 대해 평가할 수밖에 없다.


  2) 네오샤머니즘

네오샤머니즘은 몇 가지를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네오샤머니즘은 엘리아데의 기여와 같이 샤머니즘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시대적,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 현대 사회에서까지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샤머니즘의 출현이라는 면에서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그 한계에 대해 평가해보고자 한다. 첫째, 네오샤머니즘의 정의에 관련된 문제이다. 물론 이 글에서 지칭되는 네오샤머니즘은 북미를 중심으로 하는 현상을 지칭하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네오샤머니즘에 정의와 논의는 네오샤머니즘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을 갖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네오샤머니즘이라는 용어에 대한 학계의 합의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부산대학교의 양민종 교수는 네오샤머니즘을 소비에트 이후에 시베리아 지역의 샤머니즘의 재형성 또는 재건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용어의 혼동은 네오샤머니즘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학계에서 통일된 언어의 사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네오샤머니즘이 북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으로 한정을 짓던지 아니면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샤머니즘의 재형성을 지칭하는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거듭 밝히지만 이 글에서는 북미지역을 중심으로 한 네오샤머니즘을 택했는데, 일단 자료 면에서, 접근성 면에서 용이했기 때문이라고 밝혀둔다.  

둘째, 서구 편향적이라는 문제점이다. 엄밀히 말해 북미 지역 편향적인 네오샤머니즘은 서구인들의 관심에서 시작된 것으로 매우 서구적인 샤머니즘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서구적인 입맛에 맞는 샤머니즘과 동양적인 사회적 삶에 맞는 샤머니즘의 차이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의 무당의 경우 표준화가 이루어져 지역적인 특색이 점점 사라지는 등의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지만 적어도 공동체적 관계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일정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에 반해  북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네오샤머니즘은 철저히 개인주의적인(individual) 관심과 요구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특히 내적인 지혜나 목소리를 강조하면서 개인적인 영과의 소통(communication)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공동체성을 상실함으로써 한편으로 샤머니즘의 종교적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직접적인 참여관찰이 갖고 있는 한계점이다. 네오샤머니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카스타네다, 마이클 하르너(Michael Harner), 빅터 산체스(Victor Sanchez) 모두 참여관찰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샤먼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인디언의 타자성에 대해서 그들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변화되었다고 말했다. 참여적 관찰을 통해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으면 현상의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나 과도한 참여관찰 역시 대상을 이해하는데 참여자의 편견과 오해가 개입될 여지가 분명하게 있다. 특히 카스타네다의 경우는 그가 쓴 책의 많은 예들이 개인의 창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의심받기도 했다. 그리고 지혜를 전수한 돈 주앙이 실제 인물이냐 하는 반박자료들이 수두룩할 정도로 사실성이 의심받고 있다. 그래서 가공의 인물을 통해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만큼 참여관찰이 갖고 있는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문제점을 네오샤머니즘이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네오샤머니즘의 역할과 공헌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큰 공헌은 무엇보다도 샤머니즘을 대중화시켰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남다른 족적을 남겼다고 할 것이다. 4. 나오는 말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연구와 네오샤머니즘은 각각 다른 영역에서 기여를 했다. 엘리아데의 경우는 치밀하고 방대한 학문적 업적으로 인해 학자들과 전문가 집단에게 수용되어졌다. 네오샤머니즘의 경우는 샤머니즘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 이 둘이 영역이 분리되어져 있고,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196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보편성’이라는 양상에서 보면 공통분모가 있기도 하다. 이 글은 두 축을 중심으로 1960년대 이후의 샤머니즘의 연구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물론 기여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연구는 보편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샤머니즘의 설명에 부족함을 드러냈고, 무리한 적용도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리고 네오샤머니즘 성향의 학자들은 ‘참여’와 ‘경험’을 강조하다 보니까 참여자의 편견과 오해, 심지어 창작까지 하는 문제점을 노출하였다. 그러므로 이 양자 모두 완벽하게 샤머니즘을 설명했다고는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한계와 문제를 안고 있지만 1960년 이후 샤머니즘의 대중화와 편견 극복에 많은 공헌을 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연구의 방향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쉽게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이 양자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면 매우 종합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물을 양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2013.01.16 18:25



8장 종교적 대화(Religious Dialogue)  



  1. 오리엔탈리즘의 도전(the Challenge of Orientalism)

20세기 서양철학에서는 아직 동양이 주변적인 존재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종교와 신학의 영역에서만큼은 매우 다른 대접을 받았다. 이에 대해, 신학자 제프리 패린더(Geoffrey Parrinder)는 빅토리아(Victorian) 시대의 신앙 위기에서 불교는 종교개혁(Reformation)에 버금가는 강한 영향(impact)을 주었으며, 이 사건은 “근대의 가장 의미심장한 사건 중에 하나”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빅토리아 시대 이후, 밀어 닥친 동양(the East)의 지적논쟁과 사회적인 영향력은  20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서양에게 있어서 동양은 위협인 동시에 구원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회(the Jesuit)의 윌리엄 존스턴(William Johnston)의 경우, “우리는 지금 새로운 종교적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기독교와 위대한 동양의 종교들과의 만남이 될 것이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여기에서 이 책의 저자(J. J. Clarke)는 동서양의 종교적 전통들 사이에 발생한 역사적인 대화를 살펴보면서 이 ‘획기적인 만남’(epochal meeting)을 고찰해 나갈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시아의 빛》(The Light of Asia)의 출간이나 신지학협회(the Theosophical Society)의 출현으로 동양종교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학문과 종교에 대한 존중에 불과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동양종교를 공개적으로 채택하거나 고백한 사람들은 소수에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서 서양의 정신적인 위기는 동양의 오솔길이 제시하는 정신적인 삶의 갱신과 심화의 길로 나아가게 했다. 즉 C. G. 융(C. G. Jung)의 지적처럼, “낡은 종교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정신적인 에너지가 분출된 것”이었다. 신학자 하비 콕스(Harvey Cox)는 “동양종교에 대한 관심의 물결은 미국 종교사에서 유래가 없는 것”으로 그만큼 동양에 대한 관심의 폭과 깊이가 다른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1960, 70년대에 이르러는 동양종교는 가히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예를 들어, 많은 젊은이들이 ‘크리슈나 의식을 위한 국제협회’(the International for Krishna Consciousness), 마하리쉬(the Maharishi), 바그완 라즈니쉬(Bagwan Rajneesh),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의 종교운동이 폭넓게 퍼졌으며, 이런 와중에 스즈키(D. T. Suzuki)와 앨런 와츠(Allen Watts) 등이 정신적인 자양분을 서구인들에게 제공하였다. 

이렇듯, 새로운 동양종교의 유행은 그동안 독점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던 기독교에게는 가히 심각하고 중대한 도전(challenge)이라고 받아 들일만 했다. 그것으로 인하여, 기독교 내부에서는 자신들의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이러한 상황을 “세계종교들의 극적인 조우”(the dramatic encounter of world religions)라고 표현했다. 이제 좋던 싫던 서구 기독교와 사회는 동양종교라는 강력한 라이벌을 조우하게 된 것이다. 패린더가 언급했던 것처럼 ‘유대교와 기독교는 자신들만이 최고의 진리와 철학을 소유한 우월한 존재라는 사고에 익숙해 있었는데’,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날카로운 도전을 접하게 된 것이다. 데이비드 트레이시(David Tracy)가 지적했던 것처럼 “다른 위대한 종교와 대화하지 않고는 기독교 조직신학을 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서구 사회에서의 동양종교에 증폭된 관심은 새로운 사상적 물꼬를 트게 하기 계기가 되었다. 


  1. 비교연구와 보편주의의 외양(Comparative Studies and the Universalist Outlook)

이러한 심각한 도전에 대한 기독교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일부는 위협으로 받아 들였는데, 또 다른 한편에서는 자기평가와 쇄신의 기회라고 반가워 했다.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의 경우는 정통신학을 강조하면서 전통적인 교의를 강화하는 쪽으로, 하비 콕스는 토론과 상호이해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폴 틸리히는 동서양의 조우가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순환하는 리듬으로 스스로를 재평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유연적인 입장을 각각 취했다. 종교철학자인 니니안 스마트(Ninian Smart)는 종교적 대화를 강력하게 옹호하면서, ‘상호적 다원주의’(interactive pluralism)에 입각하여 전통적인 종교적 충성심을 불가피하게 양보해야 한다고 보았다. 즉 동양의 침입을 자신들을 위협하는 사악한 것으로만 간주하지 말고, 창조적인 긴장 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창조적인 것으로 활용할 것을 주문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다원주의적 외양의 징후는 비교종교학(comparative religion)의 성장에서도 잘 나타났다.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Friedrich Max Müller)는 실제적인 비교종교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사용한 단어인 “종교의 과학”(the Science of Religion)이라는 개념에서 잘 드러나듯이 새로운 학문인 종교학에서는 종교들에 대해서 진정으로 과학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즉 당파성이 없는 과학적인 방법론을 통해서 중립성을 확보하게 된 비교연구가 비교종교학을 가능하게끔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전망처럼 비교종교학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거치면서 성장과 확산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비교종교학을 가르치는 정식교수로 리즈 데이비스(T. W. Rhys Davids)가 1904년에 맨체스터대학(Manchester University)에서 임명되었졌다. 뿐만 아니라 종교학이 더 많은 학술기관과 대학에서 교과목으로 채택되었다.  주지 하다시피, 비교종교학의 주제와 쟁점은 막스 뮐러에 의해서 기틀이 닦여졌는데, 그것들 가운데 가장 탁월한 주제로 손꼽히는 것은 바로 ‘보편주의’(universalism)였다. 이 사상의 기저에는 “인간의 지혜 가장 깊은 곳에는 모든 인류가 포용하는 전망이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즉 철학적, 종교적 보편주의는 사람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이 계속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동시에 지구상의 사람들이 여러 측면에서 가깝게 될 때에 인류를 통합하려는 열망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서구 지식인들 가운데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신학자 외의 인물 중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기독교로부터 걸어 나와 불교와 베단타 철학을 탐구하며 세계의 신비적 전통을 연구하는 등 동양종교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헉슬리는 수많은 저작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혀 왔는데, 인도의 종교 사상이 서구의 근대적 질병(공격성, 과도한 합리주의, 도덕적인 혼란 등)을 치유할 수 있는 해결책이라고 보았다. 신비주의에 근거해서 세계의 다양한 종교적 전통의 기저에는 진리의 핵심이 있으며, 이 핵심이 베단타 철학(Vedānta philosophy)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했다.

 종교적 신념과 종파를 초월하는 보편적이고 영구적인 지혜(perennial wisdom)의 탐구는 많은 경우 소위 ‘비의적 전통’(esoteric tradition)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비의적인 전통은 제도권 종교적 전통을 넘어서거나 그 물밑에서 은밀하게 진행되어져 왔다. 이러한 ‘숨겨진’(hidden) 전통들은 고대 또는 동양의 종교 전통에서 존재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결과 동양 종교 전통에 영향을 받은 밀교주의(esotericism)가 19, 20세기에 유행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언급되어야 할 두 사람의 사상가가 있는데, 그들이 바로 르네 게농(René Guénon)과 프리초프 슈온(Fritjof Schuon)이다. 이들은 특히 불교와 힌두교에 의지하여 전 지구적인 종교의 모양을 설명하고자 했다.

  특히 게농이 경우, 막스 뮐러의 실증주의적 동양 해석을 거부하고, 헉슬리의 서구화된 베단타를 비판했으며, 심지어 신지학회의 주장을 근거없는 이미지 메이킹만으로 만들어 낸 ‘왜곡’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고대에는 인류의 공통적 유산이었으나 지금은 힌두교로 대표되는 베단타의 가르침으로 회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게농의 추종자였던 슈온 역시 신비적인 전통에서 보존되어 온 영구적인 영성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1. 신비주의와 보편주의(Mysticism and Universalism)

보편주의, 밀교주의 그리고 신비주의는 자주 결합을 한다. 신비주의 경우 동서양 종교의 표면적인 차이점을 결합하고자 했던 서구 사상가들에게서 매우 매력적인 면이 있었다. 스테이스(W. T. Stace)는 신비주의가 모든 종교의 핵심이며 동양의 종교와 기독교를 가장 밀접하게 결합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윌리암 제임스(William James)의 경우, 종교들에게서 되풀이 되는 특징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러므로 신비적 언설에는 영원한 일치성이 있다”고 여겼다. 루돌프 오토(Rudolf Otto)는 ‘신비스런 감정’(the sense of the numinous)이 모든 종교적 신념의 보편적인 기초라고 보았다. 

특히 신비주의를 통해 동서양의 정신을 비교한 사람으로 마틴 부버(Martin Buber)와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을 주목할만 하다. 인도의 시인이었던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의 친구였던 부버는 신비주의의 비교연구를 지지하면서 동서양의 종교 간 대화를 주장했다. 그의 핵심 사상인 ‘나와 너’(I-thou)와 ‘나와 그것’(I-it)의 관계에서 타자를 ‘존재 그대로 두는’(let be)의 사상을 도교의 무위사상(Taoist idea of wu-wei) 에서 차용해왔다는 것이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샤르댕은 중국에서 여러 해를 살았었으며, 이 경험이 동양에 관심을 갖게 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세계종교들을 거울 삼아 자신의 종교를 재고할 필요가 있음을 주장했다. 나아가 중국이 “서양에 젊은 가져다 주는 사상과 신비주의의 보고”라고 여겼기에 중국과의 정신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신학자 우르술라 킹(Ursula King)은 그에게서 보편주의적 안목을 발견했는데, 동양을 경험하지 않고는 “궁극적으로 동양과 서양을 함께 초월할 하나의 지구를 꿈꿀 수 없으며 통합성과 보편성 그리고 용감한 탐구정신을......발전시킬 수 없다”고 한 언설이 이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물론 보편주의전 전망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들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의 주장을 요약해보면 이렇다. 카츠(S. T. Katz)는 신비주의는 각기 다른 사회적, 종교적 환경의 산물이며, 서로 다른 전통으로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없다고 보았다. 또한 동양에 신비적인 무엇인가가 있다는 관념은 서양의 합리주의 대척점에 동양의 것을 두려는 서양의 패권적인 태도가 반영된 것으로 여겼다. 다른 이들 가운데에는 보편성의 강조가 문화적 다양성이나 정체성을 약화 시킨다는 견해도 있다.(물론 이들 외에도 제너(R. C. Zaehner)는 ‘일관성의 중심은 오직 그리스도’라면서 보편주의를 반대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이렇듯 보편주의는 종교가 문화와 역사적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상대적인 요소들을 간과할 수 있는 서구 문화제국주의의 ‘전체화’(totalising)의 담론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사실은 깊이 염두해 두어야 할 것 같다.

  1. 신앙 간의 대화(The Inter-Faith Dialogue)

그렇다고 해서, 보편주의적인 기획의 쇠퇴가 비교종교 연구의 후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보편주의적 기획의 유산으로 인해 새로운 단계로의 진입이 가능해졌다. 그 새로운 단계란 바로 ‘대화’(dialogue) 였다. 사실 기독교 종파들 간의 낮은 단계의 대화에서 동양종교와의 적극적인 대화로 진척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화의 물꼬는 1893년의 ‘세계종교회의’(the World’s Parliament of Religions)였다. 모든 종교지도자들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눈 최초의 시도였다. 제1차, 2차 세계대전 사이에 유럽과 미국에서 다양하게 종교 간 대화가 진행되어질 정도로 대화는 급성장을 거듭했다. 1921년은 루돌프 오토에 의해서 ‘종교인 연맹’(the Inter-Religious League)이, 그리고 ‘세계신앙단체 국제회의’(the International Congress the World Fellowship)와 ‘세계신앙회의’(the World Congress of Faiths) 등등 많은 단체들이 설립되어졌다. 

1933년과 1969년 사이까지 지속된 종교세미나인 ‘에라노스’(Eranos)에서는 종교다원성을 인정하고, 대화에 개방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 모임의 좌장격인 C. G. 융은 주요 의제와 논조를 설정하는데 중심적인 인물이었다. 참석자들 중에는 물리학자, 인류학자뿐만 아니라 신학자인 마틴 부버, 폴 틸리히, 오리엔탈리스트인 캐롤라인 리즈 데이비즈(Caroline Rhys Davids), 스즈키, 종교학자인 엘리아데(Mircea Eliade)와 같이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참석했다. 특히 엘리아데

는 동서양 대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만약 서구문화가 다른 문화들을 경멸하거나 그것들과의 대화를 소홀히 한다면 편협한 지방주의(provincialism)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해석학은 타자들(the others)의 문화적 가치와의 조우 및 대면이라는 지상과제에 대한 서구인의 대응 중 유일하게 지적인 대응이다.” 틸리히는 ‘개종’(conversion)이 아닌 ‘대화’를 말하면서 만약 기독교가 이것을 받아 들인다면 거대한 진전의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타자들의 문화적 가치와 대면해야 할 필요성은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긴급한 사안이 되었다. 특히 기독교의 경우, 종교다원성에 의식이 증가하면서 기독교 신앙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는 더 이상 세계를 파악할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는가” 또한 ‘기독교의 계시는 유일무이하고 배타적인가’ 하는 신학적 논쟁들을 불러 일으키게 되었다. 1970년에 개신교의 WCC(세계교회협의회:the World Council of Churches)에서는 ‘신앙과 이념으로 사는 인류의 대화’(Men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 라는 하부기구를 설치하여 다른 종교와 다양한 수준의 대화를 지속하고 있다. 또한 로만 가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는 제2바티칸 공의회(the Second Vatican Council,1962-5)에서 “신은 모든 인류의 구원을 바란다”는 원리를 제시했다. 즉 과거의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는 교리에서 극적인 변화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면서 신이 은연중에 익명의 방식으로 비기독교 신앙에서도 구원의 역사를 한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신은 여러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며, 타종교에게도 안간 존재를 계몽하는 진리의 광명이 비춘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1. 배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Exclusivism, Inclusivism, Pluralism)

대화를 향한 태도의 스펙트럼은 다음의 세 가지 범주 또는 패러다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그리스도와 기독교 신앙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을 제시하며 타종교들은 우상숭배라는 전통적인 신념인 배타주의이다. 둘째, 그리스도는 분명하고도 권위적인 신의 계시이지만 비기독교 종교에서도 신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포괄주의가 그것이다. 셋째, 기독교의 진리가 비기독교 신앙의 그것보다 더 높거나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다원주의가 마지막 세번째에 해당하는 것이다. 

배타주의 진영에서는 칼 바르트와 핸드릭 크래머(Hendrik Kraemer)가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바르트는 ‘신정통주의’(Neo-Orthodoxy)를 표방하며 기독교 계시의 독자성을 수호하려고 했다. 바르트는 ‘종교’와 ‘계시‘(revelation)를 각기 구분했다.

 반면에 선교사 출신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선교를 했던 경력을 갖고 있었던 핸드릭 크래머는 바르트를 수용하면서도 어느 정도 동양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보편주의를 거부했지만, 그래도 동서양의 종교적인 만남을 중요한 사건으로 여겼다. 그러나 보수적인 신학의 경계를 완전히 허문 것이 아니었다. 즉 그 역시 여전히 기독교적인 신학 테두리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포괄주의 진영은 가톨릭 오리엔탈리스트 학자인 재너(R. C. Zaehner)와 칼 라너(Karl Rahner)가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재너는  초기 저작에서는 모든 위대한 종교들이 교리상의 유사성이 근본적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사상을 거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스라엘의 법률이자 예언자일 뿐 아니라, 이란의 예언자와 현자까지도 구현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후기저작에서는 인도의 종교가 기독교를 심화시켜주는 통찰들을 열어 주었다는 평가를 내리면서 더 자유롭게 변하기도 했다. 알다시피, 포괄주의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성을 강조하면서 다른 종교에서도 신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로만 가톨릭에서 포괄주의적 패러다임을 주조한 사람이 바로 칼 라너였다. 그는 비기독교적 종교들은 그리스도의 말씀과 은총을 선의의 비신자들에게 중개(mediate)한다고 보았다. 틸리히의 경우는 대화를 많이 강조한 학자였다. 틸리히는 전통 기독교가 말하는 ‘인격신’(a quasi-human person)보다는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으로서의 신에 관심이 있었으며, 그래서 일본의 선불교에서의 깨달음(satori)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그는 계시가 기독교 신앙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며 파편화 되어 각 종교에 구현되어 있으며, 인간 생존의 문제에 하나의 대답을 구체화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보았다. 

다원주의 진영의 학자들은 니니안 스마트, 존 힉(John Hick), 존 콥(John Cobb), 한스 큉(Hans Küng)폴 니터(Paul Knitter), 레이문도 파니카(Raimund Panikkar), 판넨베르크(Wolfhart Pannenberg), 데이비드 트레이시(David Tracy) 등 다수의 학자들이 포진되어 있다.  이들은 어떤 종교도 다른 종교보다 더 규범적이고 우월하지 않으며, 모든 종교는 역사적, 문화적 조건 속에서 그들 스스로의 방식으로 만들어져 왔다고 주장했다. 폴 니터는 기독교의 유일무이한 우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에게 ‘패러다임의 변화’(paradigm shift)를 요구했으며, 존 힉은 기독교가 자기 중심적인 입장을 버리고 다른 종교와의 관계를 모색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Copernican revolution)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큉은 다른 종교와의 대화는 “오랜 신앙을 파괴하지 않고 오히려 풍부해진다는 것을 배우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큉이나 콥이 상대주의적 관점까지 전부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큉의 경우, 다원주의적 시각 아래에서 “어느 것이든 다 좋다는 것은 값싼 관용”이며, “성립될 수 없는 신앙무차별론”을 반대했다. 즉 모든 종교를 동등하게 여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상대주의의 쟁점은 동서양의 종교적 대화를 당대의 첨예란 해석학적 논쟁으로 이끌었다. 즉 종교 간의 대화가 기독교나 불교도의 자의식적인 상호대조나 인공적인 양극화가 없이 순수하게 해석학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종교가 같은 진리를 가르친다는 것은 각 종교적 교의의 복잡함과 풍부함을 간과할 위험이 있으며, 동시에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무시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동서양 종교 간의 대화가 제국주의적 혐의를 가지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조셉 기타가와(Joseph Kitagawa)는 “서구 교회의 선교사업의 파산을 은폐하려는 책략”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닌가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것으로 대화의 노력을 접어야 할까? 아닐 것이다. 평범한 기독교인들은 아직도 대화를 위험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즉 대화 자체가 시작되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심지어 기독교와 유교 간의 대화는 최근에 이르러서야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대화를 향한 운동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1. 영성적인 수행에서의 대화(Dialogue in Spiritual Practice)

위에서 살펴 본 것들은 대부분 신학적, 철학적 수준의 대화였다면, 이제는 영성적인 수행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에 대해 간략히 논의보도록 하자. 최근 동양적인 명상법이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관심을 얻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 하다. 월리엄 존스턴(William Johnston)은 이를 두고 “기독교적 영성의 혁명”이라고까지 극찬을 했다. 또한 동양의 경전 일부를 채택하려는 용감한 기독교인들도 있다. 즉 베단타 문헌 선집과 찬송가를 기독교의 예배에 통합키려는 시도를 보이기도 했다. 베네딕트 수도사인 앙리 르소(Henri le Saux)가 대표적이다. 

아마도 기독교와 동양의 정신적인 수행방법의 통합을 제안했던 사람 중에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인물은 트라피스트(Trappist)의 수도사였던 토머스 머튼(Thomas Merton)일 것이다. 그는 동양의 현자들의 가르침과 실천을 연구하여, 이를 바탕으로 기독교 명상과 신비주의적 전통을 조명하려고 했다. 특히 선수행에 대해서는 “서양에 도움이 되는 통찰과 의식의 현상학과 형이상학을 제공한다”고 믿었다. 이렇듯 동양 전통의 영적이며 정신적인 수행들이 기독교의 수도사와 명상가들에게서 수행적인 수준의 대화와 실천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히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신학적, 철학적 수준의 대화와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심층적인 차원의 종교 간 만남과 대화는 자신이 속한 종교 전통에 대한 믿음을 퇴락시키거나 파괴시킬 것이라는 우려와는 다르게 풍부하고 깊이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그래서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라 더 깊고 너른 하늘을 직시하고 세상 밖으로 과감하게 첫발을 내딛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