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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조각들...

명품 기독교, 명품 교회 를 꿈꾸며......(1)


'명품' 교회를 꿈꾸며......

요즘 흔히 사용되는 단어가 있다. '명품'이라는 단어이다. 일례로, 세종신도시를 명품 도시로 만들겠다는 자못 거창한 수사어구와 장미빛 계획들이 난무한다. 글쎄 명품이라.... 기존의 행정 도시 특화된 계획을 백지화하면서 갖다 붙인 단어로는 왠지 옹색하기 그지없다. 근데 뜬금없이 기독교, 아차 기독교라는 말은 너무 광의적이지....아니 개신교 또는 교회를 명품으로 바꾸었으면 하는 생각이 주책맞게도 묘한 시기에 머릿 속에 떠오는 것은 무슨 곰살맞은 짓인지 모르겠다. 내 친한 친구녀석이 이런 글의 제목으로 쓴 이 글을 보면 아마도 핀잔을 줄 것 같아서 더 민망스럽다.

그래도 꿋꿋하게 이 단어를 밀어 볼 심산이다. 왜냐하면 명품이라는 단어를 떠 올린 것은 요 근래 일이지만 그 단어에 담길 내용들을 생각한 것은 매우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좀 촌스러워 보이고 너무나 진부하게 느껴지는 단어이지만 지금은 딱히 대체할 만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누가 알겠나 훗날 다른 단어로 대체할지????  암튼 그렇다면 도대체 명품 교회란 무엇일까? 이 주제에 대해서는 몇 번에 걸쳐 이야기를 풀어 놓을까 한다.

미국에서 6년을 살며 공부하고 사역을 하면서 미국 교회에 참석한 적이 없어. 한국에 귀국하기 한달 전에 미국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다. 보스톤에서 종교 사회학으로 공부를 했고, 서울대에서도 석사논문을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성장과 탈세속화"는 걸로 쓰고서 정작 미국교회의 언저리에 안가본 것이 좀 찜찜하기도 했다. 그래서 큰 맘을 먹고 한달 동안 라스베가스의 Central Christian Church에 출석했다. 아래의 사진은 그 교회의 측면 사진이다. 전경을 얻으려고 했는데 본인이 찍은 사진이 없어놔서.....

 


라스베가스에서는 꽤 지명도도 있으면서 성장하는 교회이다. 복음주의 계열의 교회이며 초교파이다.  담임 목사는 Jud Wilhite이다. 다음 사진은 그의 사진이다. 수천명이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목사님 치고는 꽤 젊다. 놀라운 사실은 양복이나 가운이 아니라 저렇게 입고 주일 설교를 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미국의 복음주의들은 소위 Seeker-Centered Worship(구도자 중심 예배)라고 해서 전통적인 방식의 예배형식이 아니라 매우 자유분방한(?) 예배틀로 주일예배를 인도한다. 첫 예배 때에는 문화적 충격이 매우 큰 탓에 딱히 뭐라 형언하기 힘든 감정을 느꼈다. 우선 극장식 예배 공간도 그랬고, 한국 교회에서 하는 주기도문, 사도신경, 성시교독, 성가대, 축도 등의 순서들이 싸그리 빠져 있었다.  예배가 끝난 다음 목사님이 축도 대신에 "dismissed" 한자로 "해산", 우리 말로 한다면 "끝났습니다"라고 할 때에는 축도를 기대한 나 자신이 매우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어떻게 이걸 받아 들여야 할지 고민이 되서 말이다. 그래도 다음 다시 안와야지 하는 생각을 들지 않은 것이 매우 다행이라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래의 사진은 예배 때에 찬양단이 찬양을 인도하는 모습이다. 찬양단이라고 불러도 되나? 아님 찬양 밴드, 찬양 클럽, 찬양악단, 잘 모르겠다. 찬양단이지 뭐. 


이렇게 입고  극장식 의자에 앉아서 컴컴한 본당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상상해보시라!  이게 예배인가 아니면 무슨 쇼프로그램을 보러 온 것인지 구별이 될까? 사실 설교나 헌금 시간을 빼면 예배라기 보다는 락 콘서트에 온 기분이 더 들었다. 글쎄 설교 전 찬양에서는  애니메이션 "이집트의 왕자"에 주제곡이며 머라이어 케리와 휘트니 휴스톤이 같이 부른 "When You Believe"를 찬양단이 솔로로 불렀으니 참 그랬다. 뭐, 물론 내 자신이 너무 구닥다리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한달 동안 다니면서 적응되니까 그것도 좋다는 마음이 생긴 것 보아서는 나도 변화하긴 변한 모양이다.

이런 구도자 중심의 예배들이 일반화되면서 복음주의 교회들 사이에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최근에 아마존 닷컴에서  킨들 버전으로 주문해서 보고 있는 책이 있는데 바로 "Deep Church"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Jim Belcher라는 목사님이신데, 캘리포니아의 리디머 장로교회 담임목사님이시면서 조지아타운 대학교에서 정치학 쪽으로 Ph. D를 받으신 분이다. 다음 두 사진은 책과 목사님 사진이다. 



 


사진만으로는 꽤 스타일쉬 한것 같다. 물론 매우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아님 말고.....
암튼 이 분은 이 책에서 구도자 중심을 부르짖으며 전통을 깨뜨리기만 하려는 경향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전통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구도자 중심으로 나갈 것을 제안한다. 그래서 "Deep"이라는 단어를 갖다 쓴 것 같다. "가벼움"만이 아니라 "깊이"를 추구하는 교회로 돌아가자고 말이다. 다음 번에 논할 기회가 있겠지만 소위 성령주의 교회들 중에는 뉴욕 타임즈에 소개된 기사에 의하면 10대 소년이 목사님으로 설교도 하고 안수를 하는 경우도 있다.(이 주제는 다음의 한 회를 모두 할애해서 소개할 것이다) 참 받아들이기 힘든 사안인데도 미국의 흑인 성령주의 교회들 사이에는 무리 없이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러니 "가벼움"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아마도 이 글에서 말하고 싶은 명품 교회의 모습은 위에서 소개한 교회도 또한 성령주의 교회도 아니다. 이야기를 계속해서 풀어가면 얼개가 차차 들어날 것이다. 적어도 Jim Belcher 말하는 deep church라는 개념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적 맥락이나 삶의 자리를 간과한 것이어서는 더더군다나 안된다. 그렇다면 "명품 교회"는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 이야기를 차차 풀어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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