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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에 관련된 글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연구와 네오 샤머니즘




“1960년 이후 샤머니즘 연구의 변화”

  • 엘리아데의 샤머니즘연구와 네오샤머니즘을 중심으로-





  1. 들어가는 말

과거 샤머니즘은 시베리아 지역에 한정된 매우 이상하며 비정상적인 종교라고 취급받아 왔다. 사실 종교라고 여겨지지도 않았고, 미신 또는 후진적인 문화습성이라고 여겨졌다. 이러한 평가도 다음의 평가에 비하면 박한 것이 아니었다. 더 심한 평가는 시베리아 지역의 기후 특성이 반영되어진 정신 병리학적 현상으로 본 것이다. 쉽게 말해 시베리아 지역에만 나타나는 정신병의 일종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저술과 여러 학자들의 학문적인 연구와 책을 통해서 그것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이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샤머니즘의 평가와 대우가 그렇게 개선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데 접어들면서 히피문화(Hipi)와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이 격화되었던 시절이었다. 오랫동안 잊어 왔던, 아니 관심조차 없었던 샤머니즘에 대한 재평가가 적극적 이루어졌다. 

이 시기 이후로 북미 지역(North America)에서 과거에 비해 샤머니즘(shamanism)에 대한 관심이 많이 증폭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여러 가지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인 요인들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것은 이 글의 분량에도 넘치거니와 이미 설명하는 논문이나 책이 나와 있다. 오히려 이 글에서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북미’라는 특정 지역에서 일어난 변화에 주목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 변화의 원인이 된 것은 1960년대에 새롭게 영문으로 출간된 엘리아데의 『샤머니즘』(Shamanism)과 네오샤머니즘(neo-Shamanism)의 인기와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 글은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이해와 네오샤머니즘을 설명하고 문제점을 짚어 보려고 한다. 

논의를 보다 간결하게 이끌기 위해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네오샤머니즘, 이 둘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와 같이 나누어서 살펴 볼 것이다. 먼저 엘리아데의 샤머니즘에서는 개괄적으로 정리한 뒤에 문제가 되는 쟁점을 다룰 것이며, 네오샤머니즘에서는 이것이 나오게 된 사회적, 사상적 정황을 본 뒤에 주요한 개념들을 설명하려고 한다. 마지막 부분에서 이 둘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점들을 짚어 보고 개인적인 평가를 해볼 생각이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1960년대에 일었던 샤머니즘의 인기의 실체와 그 한계를 짚어 보고 앞으로의 샤머니즘을 가늠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2.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1)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엘리아데(Mircea Eliade)의 『샤머니즘』(Shamanism)은 1974년에 영역본이 나왔다. 그런데 이 영역본은 1945년의 출판 된 프랑스판 『샤머니즘』 (Le Chamanisme et techniques archaïques de l’extase)을 번역한 것이었다. 이 말은 샤머니즘에 대 한 엘리아데의 연구는 1940년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연구는 아직도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정도로 시대를 앞선 선도적 연구였다. 게다가 단행본 820편, 논문 자료 970여 편을 참조하여 수행한 방대한 자료들을 참고 있으며, 또한630페이지에 달하는 한마디로 거대한 작업이었다. 그의 이런 노고는 《샤머니즘》을 우리 시대의 샤머니즘에 관한한 최고의 고전으로 자리 잡게 하였다. 먼저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연구를 훑어보면서 성과와 한계를 지적하여 논의를 이끌어 보고자 한다.  

물론 아쉬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엽적인 문제일 수 있으나, 몇몇 자료는 직접 조사가 아니라 자료에만 의존하다가 보니까 부실한 자료를 가지고 한국 무속에 대해 ‘남방적인요소’라는 다소 애매한 표현을 했다. 무엇이 남방적인 요소인지 그리고 그 판단 근거가 무엇인지 전혀 언급이 없었다. 또한 ‘여무가 우세한 것’을 두고 ‘샤머니즘의 쇠퇴의 징후’이거나 ‘남방의 영향’이라는 평가는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언급이었거나 섣부른 결론이었다라고 비판할 여지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샤머니즘』이 지금도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엘리아데의 연구가 그 이전의 선행 연구들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이전의 연구들이 선교사들의 자료 수집, 나열과 민족지학(ethnography) 의 문화기술이거나 심리학, 사회학, 민속학자들이 소위 진화론에 입각한 연구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엘리아데는 이전의 연구의 성과물들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샤머니즘 이론을 정립하고자 했다. 엘리아데는, 1) 샤머니즘이 기성 종교적인 성격을 부정하고, 2) 샤머니즘의 본질을 샤먼(shaman)의 공연성 또는 굿(sēance)와 결부된 영적인 기술에 국한함으로써, 3) 샤머니즘이 시베리아의 고유한 문화전통이 아닌 인간의 영적인 특성의 원형으로 제시했다. 즉 종교학자로서 샤머니즘을 단순한 지역적인 역사자료라는 편협한 시각을 통해서만 보면 안 되며 오히려 깊은 의미를 해석하고 해독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샤머니즘을 시베리아의 지역적인 문화특성이 아니라 범지구적이고 보편적인 종교현상으로 해독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은 그의 해석학적 틀로 인해 가능했다. 즉 샤머니즘을 종교적 인간(homo religious)이라는 ‘해석학적 전제’를 가지고 세계인류가 경험하는 원형적인 정신문화로 볼 것을 주문했던 것이다. 이러한 엘리아데의 연구 업적은 샤머니즘을 흔히 지칭하던 이교주의(paganism)을 대체하는 긍정적인 용어로 환영을 받았다.

  2) 엘리아데의 세 가지 쟁점

엘리아데의 샤머니즘엘리아데의 샤머니즘을 본격적으로 평가를 위해 그에게 나타나는 샤머니즘의 쟁점에 대해서 몇 가지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첫째, 샤먼의 정의문제이다. 엘리아데는 “탈혼망아의 체험을 통해서 교도를 치유하고, 사자를 명계로 인도하고 그들과 천상계 및 지하계에 있는 크고 작은 신들 사이에 중보자(mediator)로 봉사하는 사람이 바로 샤먼이다”라고 언급한다. 즉 샤먼은 ‘엑스터의 기술’(technique of ecstasy)을 통해 천계상승이나 지하계 하강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엑스터시 전문가인 셈이다. 이 기술을 통해 악령이나 질병과 싸울 수 있는 특수화된 특기자이기도 하다. 엘리아데는 그러면서 샤먼을 엑스터시 경험(ecstasy experience)을 통해 고귀한 종교적 체험을 얻는 접신의 전문가이기도 하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면모는 여타의 종교 전문가와 분명하게 구분된다. 또한 엘리아데에 의하면 샤먼은 영신(spirit)과의 관계에서도 정의된다고 보았다. 즉 샤먼은 결코 ‘영신들에 의해서 빙의(possessed)되지 않으며’, 영신들의 ‘도구(instrument)로 전락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물론 빙의되는 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특별한 설명이 필요한 매우 드문 사례라고 말한다.후에 언급하겠지만 그렇다면 탈혼이 아닌 빙의가 된 경우를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엘리아데의 평가와는 다르게 많은 나라에서 빙의된 샤먼의 모습이 등장한다는 점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둘째, 시간성의 문제이다. 엘리아데가 샤먼을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엘리아데는 샤머니즘을 이렇게 정의한다. “고대의 접신술(the archaic techniques of ecstasy)-신비주의인 동시에 주술이자 넓은 의미의 종교”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고대는 영어의 ‘ancient’라는 시간적 의미의 단어가 아니라 ‘archaic’이라는 ‘시간상의 개념’이 아니라 ‘원초적’ 또는 ‘원형적인’의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엘리아데가시베리아의 공간성을 뛰어 넘으려고 했던 것만큼 주목했던 것이 바로 “시간성”의 문제였다. 그는 샤머니즘을 현대에서도 그 영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살아 있는 의미를 주목하려고 했던 것이다. 즉 과거의 한 때에 존재했던 종교현상이 아니라 지금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존하는 영성적인 의미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잘 담지하고 있는 종교현상이 바로 샤머니즘이라고 파악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엘리아데가 샤먼을 이상적인 존재, 지고하고 순수한 종교적인 전문가로 본 것만은 아니다. 저널리스트인 클라우드앙리 로케(Claude-Henri Rocquet)의 대화집인 『미로의 시련』 (L’épreuve du labyrinthe)에서 엘리아데는 “샤먼은 공동체의 영적인 안내가자 되기 위해서, 공동체를 교화하고 안심시키기 위해서 안 보이는 것을 표현하기도 해야 하고, 속임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엘리아데가 샤먼을 순수하고 원초적인 종교 전문가로만 표현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그럼에도 샤머니즘 속에서 원형적인 것에 대한 기대가 묻어 있다. 그는 분명히 샤머니즘을 통해 비역사적이고 시간과 관련이 없는 성스러움의 의미와 구조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엘리아데는 샤머니즘을 ‘고대의 접신술’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즉 시간성을 뛰어 넘어 원초적인 성스러움을 다시금 재현하게 하는 엑스터시, 접신의 기술이라는 틀에서 보려고 했다. 

셋째, 보편성의 문제이다. 엘리아데는 정말 ‘백과사전(encyclopedia)식’으로 다양한 샤머니즘의 경우들을 예를 들고 있다. 그가 예를 들고 있는 샤머니즘은 우리에게 샤머니즘의 원형을 제시하는 시베리아에서 북미, 남미, 동남아시아 그리고 유럽, 고대 그리스까지 그 역사적 층위와 지역적 범위가 깊고 다양하다. 즉 엘리아데는 샤머니즘이 범세계적인 보편적인 문화현상, 영성(spirituality)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정말 백과사전처럼 다양한 사례들을 들고 있다. 문제는 구조적인 유사성에 기대어 외연의 끊임없는 확대는 가지고 왔지만, 정작 문제는 구조적으로 확대된 큰 틀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샤머니즘의 개념적인 혼란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에 대한 비판들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즉 백과사전식 나열이라는 주장과 너무 개념 설정이 모호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3. 네오샤머니즘(Neo-Shamanism) 

  1) 네오샤머니즘 형성의 사회적, 사상적 상황들

1960년대는 새로운 영성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던 시기였다. 히피문화로 대표되는 기존질서에 대한 반항과 도전은 서구유럽 문화 속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을 증폭시킨 시기이도 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 맞물려 샤머니즘에 대한 관심도 과거에 비해 관심의 폭과 깊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이 관심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바로 “네오샤머니즘”(neo-shamanism)일 것이다. 네오샤머니즘은 단어 그대로 과거의 종교와 연구 대상으로써의 전통적인 샤머니즘과는 분명히 다른 맥락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서구인들의 지적 호기심이나 새로운 영성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대안적인 문화 또는 종교 운동으로 단순히 연구의 객체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 얻어진 점에서 궤를 달리한다. 예를 들어 샤먼의 역할을 중심으로 볼 때에 과거의 샤머니즘이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성 내지는 집단의 통합이 중시되었다면 네오샤머니즘은 개인이 강조되는 개인성의 측면에 기대어 있다. 관심의 출발점 역시 개인적인 영성의 강조라는 점에서 과거의 샤머니즘과는 구별되는 지점이 있다. 앞으로 논의되겠지만 이러한 출발점의 차이는 네오샤머니즘의 한계와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했다. 여기에서는 네오샤머니즘에 대해 논의를 해보도록 하자. 

1964년의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영어판 발행이 학문적 영역에서의 샤머니즘에 대한 관심을 폭증시켰다. 그의 성과였다면 샤머니즘이 시베리아의 지역적 종교현상이 아니라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위치를 격상시켰다는 점이다. 이런 엘리아데의 성과물위에 인기 작가로 자기 매김 된 카스타네다(Carlos Castaneda)의 『돈 주앙의 가르침, 요기 방식의 지혜』(The Teaching of Don Juan: The Yaqui Way of Knowledge)라는 저술이 큰 관심을 얻으면서 샤머니즘이 대중적인 영역까지 외연을 확대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학문성에서는 엘리아데의 역할이, 대중성의 확보라는 측면에서는 카스타네다의 역할이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이들의 저술들이 네오샤머니즘 형성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1960년대의 시대적 상황이 엘리아데와 카스타네다의 역할에 힘을 실어 준 것은 분명하다. 특히 카스타네다의  『돈 주앙의 가르침, 요기 방식의 지혜』은 네오 샤머니즘의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저술이 왜 이토록 많은 반향을 일으켰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사회적, 문화적 정황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존의 전통들이 젊은이들의 고민과 삶에 대한 답변을 주지 못하게 되면서 전통사상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은 분명했다. 특히 계몽주의로 대변되는 합리주의, 진화론적 사고는 인간을 총체적인 존재로 보려고 하는 감성적이며, 영적인 문제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지 못했다. 서구의 모더니티(modernity)의 문화적, 종교적 지체 또는 정체는 새로운 것을 기대하는 베이비부머 세대(babyboomer)에게 자신들이 타자화 시키고 소외 시켰던 가치에 대한 재발견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여기에 새장을 열어 준 것이 바로 동양에 대한 관심이었고, 그 중 한 갈래가 샤머니즘을 새로운 대안적인 영성으로 받아들이려는 사회적 분위가 있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샤머니즘은 새로운 발견이 아니라 잊고 있었던 것에 대한 재발견이며, 서구인들의 취향에 맞는 취사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여기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이 논의는 나중에 종합적인 평가를 할 때에 다루도록 하자. 

특히 예술, 문학, 영성에서 샤머니즘에 대한 역할은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여기에는 사회적, 사상적 정황이 분명하게 있다. 과거 19세기 낭만주의의 문학과 예술에서 비합리적이며, 독특하며, 개인적인 것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었는데, 그들의 사상적인 후예인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과거 모더니스트들에 의해서 폐기 되었던 초자연적이며, 비정상적인 것들에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즉 쉽게 해답을 제시해주던 부모 이전 세대로부터 이어져 오던 익숙한 종교들(dwelling spirituality)에 대해서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면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영성(seek spirituality)에 맞는 새로운 영성(new spirituality)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영성의 추구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벗어나 동양종교의 재발견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서구 사회의 제도적인 종교 속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했던 당시의 새로운 세대들에게 인도의 힌두교, 티베트의 불교, 동양의 종교들이 소개되면서 개인의 영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났다.샤머니즘의 커진 관심은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 뿐만 아니라 대학과 연구소 등에서 샤머니즘의 강의와 커리큘럼, 그리고 연구가 확대되면서 그 양과 폭을 더 넓히게 된다. 특히 대안문화와 동양종교에 연구에 핵심에는 캘리포니아(California)에 있는 캘리포니아 통합연구소(California Institute of Integral Studies)와 에살린 연구소(Esalen Institute)등이 대표적이다. 에살린 연구소의 경우는 최초로 샤머니즘이 관련된 최초의 임상실험, 드라마 테라피(therapy), 요가와 같은 동양의 영적인 기술들을 소개하고 계발하였다. 여기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한 명사들이 바로 알렌 와트(Alan Watt), 헉슬리(Aldous Huxley), 칼 로저스(Carl Rogers), 매슬로(Maslow) 등이 그들이다. 이들에 의해서 비의적인(esoteric) 종교들이 연구되어졌으며, 대안적인 영성들에 검토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기대와 전망 속에 등장한 것이 바로 미국 원주민들이었던 인디언(native Indians)의 샤머니즘이었다. 대안을 찾던 많은 사람들에게 북미 샤머니즘은 새로운 개척지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철학적 사조와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은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2) 네오샤머니즘(Neo-Shamanism)

이미 앞에서 네오샤머니즘이 태동하게 되는 사회적, 사상적 상황은 언급하였다. 여기에서 덧붙어 한 가지만 더 언급하고 주제로 넘어가려고 한다. 네오샤머니즘의 많은 반향을 일으켰던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연구태도라고 볼 수 있다. 과거의 학자들은 객관적이라는 명목 하에 관찰적인 기술(descript)에 그쳤다. 반면에 카스타네다는 간단히 이렇게 주장했다. ‘샤먼이 되지 않고는 샤머니즘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그의 이런 생각은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학자들에게서도 공감과 동의를 이끌어 내었다. 즉 객관적인 연구라는 틀 속에서 샤머니즘의 연구가 한걸음 걸어 나와 종교적 경험과 삶이이라는 실제적인 영역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이 전환되는 부분에 네오샤머니즘이 서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네오샤머니즘은 학문적 관심이 아니라 종교 그 자체가 어떻게 현대사회에서 변형을 하면서 생존해가는 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거의 샤머니즘이 학문의 틀 속에 갇힌 것이었다면 네오샤머니즘은 그것을 깨뜨리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구별점이 있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네오샤머니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몇 가지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네오샤머니즘은 서구인들(European)에게 특히 북미인들(North Americans)에게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도 의미, 초월 그리고 대체 치료(alternative healing)와 같은 새로운 영적 추구를 하던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졌다. 그렇다면 의미, 초월, 치료라는 주제를 통해서 네오샤머니즘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세계를 이해하는 ‘의미’(meaning)의 문제이다. 전통적인 샤머니즘이 세계를 이해하는 인식론이 ‘이원론적’(dualistic) 구조라고 한다면 네오샤머니즘은 ‘범신론’(pantheistic) 또는 ‘일원론적’(monistic) 구조로 보고 있다. 달리 말하면 우주론인데 네오샤머니즘에 의하면 세계는 ‘직감적’(sentience)이고 ‘상호연결’(interconnectedness)로 투과된(permeate) 우주(the universe)라고 보고 있다. 예컨대 전통적인 샤머니즘이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도 가지고 있었다면 네오샤머니즘은 선과 악이라는 도식을 갖고 있지 않다. 또한 전통적인 샤머니즘에서 지식(knowledge)는 영들(spirits)에게서 얻는 것으로 믿어져 왔는데 네오샤머니즘에서는 내적인 지혜, 목소리(inner wisdom, voice)와 같은 안에 있는(within)에 오는 것으로 생각한다. 네오샤머니즘에서는 그렇게 되면 결국 샤먼의 역할이 달리질 수밖에 없다. 즉 종교 전문가로써의 공동체를 위한 샤먼의 역할은 축소되고 개인적 차원의 내적인 지혜를 끌어내고 알게 해주는 영적인 조언자 또는 안내자로써의 샤먼 역할만을 인정하게 된다.  

둘째, 초월(transcendence)에 관련된 문제이다. 물론 여기에서 논의하는 것은 신관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초월적 여행, 엑스터시나 트랜스 상태에서 샤먼이 천계여행을 논의하려고 한다. 전통적인 샤머니즘이 영적인 존재들의 세계로의 여행, 즉 명계로의 여행에 집중되어 있고, 샤먼 역시 천계여행 또는 명계여행의 전문가라도 볼 수 있다. 엘리아데의 표현을 빌리자면 엑스터시의 기술(techniques)을 통해 초월적 여행의 전문가인 셈이다. 여기까지는 전통적인 샤머니즘에서의 초월에 관련된 것이다. 반면에 네오샤머니즘에서 샤먼은 모든 지혜를 가진 신비사제(hierophant), 신비가(mystics), 지구의 보호자(guardian)이다. 그래서 자신이 명계로의 여행을 시도한다기보다는 영들(spirits)을 불러내는 것에 그 중점을 두고 있다. 예컨대 엑스터시(ecstasy)나 트랜스(trance) 상태에서의 명계 여행보다는 제의(ritual)이나 다른 기술(other techniques)을 통해서 영들을 불러낸다. 그러니까 초월적인 여행이나 초월적인 것에 대한 관심 자체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의 샤먼은 엑스터시 전문가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영매(’spiritualistic medium)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다르다. 

셋째, 치료(healing)와 관련된 것이다. 샤머니즘은 기본적으로 치료와 관련되어 있다. 최근의 논문 중에서도 치료를 샤먼의 종교적 수행으로 보고 시베리아, 북미, 아프리카, 아시아 전역을 치료라는 샤먼의 역할을 매개로 보편적인 현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두말 할 것도 없이 네오샤머니즘의 중요한 관심이 바로 치료에 관련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대안적 문화에서 시작하여 대체 치료법과 같은 치료에까지 관심의 폭이 넓혀졌다. 특히 북미 인디언의 샤머니즘에서 샤먼을 ‘약초의 사람’(medicine men)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샤먼은 약초나 다른 영적인 기술들을 통해 환자를 치료하기도 한다. 치료에 대한 관심은 북미를 넘어 유럽에까지 네오샤머니즘의 영역을 넓히는 데에 기여했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샤머니즘이 환자의 치료를 위해서 천계로 가서 병의 근원이 되는 영을 만나거나 문제를 해결하여 낫게 했다면, 네오샤머니즘은 약초나 다른 기술들을 통해 병을 낫게 한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구별된다고 하겠다.

이상과 같이 우리는 네오샤머니즘의 특징에 대해 몇 가지로 살펴보았다. 네오샤머니즘은 분명히 학문의 영역을 넘어 실제적 종교적 실천이라는 측면과 현대사회에 맞게 종교적 기능을 한다는 면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샤머니즘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면에서 그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네오샤머니즘은 그것이 진정한 샤머니즘의 본질을 지닌 것이냐 하는 질문을 가지게 하는 한계점도 또한 노출하고 있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서 다음 주제에서 논의해보려고 한다.   



3. 엘리아데의 샤머니즘과 네오샤머니즘에 대한 평가

  1)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우리는 위에서 간단히 세 가지의 주제 안에서 엘리아데의 샤머니즘을 정리해 보았고, 문제점을 간단히 짚어 보았다. 세 가지 주제의 문제란 샤먼의 정의, 시간성 그리고 보편성의 문제들이다. 이들 문제점에 대해서 더 평가를 해 보면 이렇다. 먼저, 샤먼의 정의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빙의(possession)와 탈혼(trance)의 양자이다. 왜냐하면 엘리아데는 빙의의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빙의의 경우는 한국 무속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샤먼인 무당에게 몸주신인 귀신뿐만 아니라 조상신들이 들어와서 빙의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드문 경우가 아니라 너무나 흔하다는 것이다. 엘리아데 역시 그의 책에서 만주 퉁구스족의 이야기를 통해서 ‘영신이 몸에 들어와 샤먼이 바닥에 쓰러지고 공수를 하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물론 본인은 드문 경우라고 생각하겠지만 말이다. 

둘째, 시간성의 문제에 관한 것을 말하자면, 이렇다. 엘리아데는 ‘창조적인 해석학’을 통해 신화-종교 자료에 대한 초역사적인 의미를 언제나 읽어 내려고 한다. 그리고 그 초역사적인 의미란 비역사적이고, 시간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종교는 시간성 안에서 존재하고 있는 지극히 역사적인 실체이다. 다시 말해 역사와 사회적 환경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종교현상이라는 사실이다. 엘리아데 본인도“모든 종교가 그 기나긴 내적 변화의 과정을 겪은 뒤에 결국 자율적인 구조를 전개”라면서 “종교 전통의 모든 요소-가장 본질적인 요소-의 개조, 갱신, 회복 그리고 통합이 있을 뿐이다”고 언급한다. 물론 엘리아데의 방점은“가장 본질적인 요소”일 것이다. 과연 갱신과 회복의 끊임없는 반복일까? 아니면 전혀 새로운 종교적인 현현은 없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보편성의 문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엘리아데도 이전 연구가들과 마찬가지로 분명히 시베리아를 염두에 두고 있다. 즉 시베리아가 고대적 종교성의 원형에 가까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엘리아데가 샤머니즘을 시베리아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종교현상으로 평가하고 있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해석은 언제는 보편적인 구조를 통해서 해독해야 하기 원했기 때문이다. 엘리아데에게 있어서 종교현상은 지역적이며, 역사적 환경에 환원된 존재가 아니라 종교적 인간(homo religious)이 경험하게 되는 보편적인 종교 경험이다. 즉 샤머니즘 역시 범세계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인간은 태고의 종교적 원초성을 각자의 환경과 역사적 경험이 다르긴 하지만 여전히 기억되고 지켜지는 보편적인 현상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엘리아데의 학문적 성과물들은 샤머니즘에 대한 새로운 물꼬를 튼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위에서 지적한 것 외에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연구는 큰 문제점을 지닌다. 왜냐하면 그의 연구는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 큰 약점을 가지고 있다. 나아가 변화하고 있는 종교로써의 샤머니즘의 역동성을 간과하는 면을 가지고 있다. 샤머니즘의 의미와 구조를 알았다고 해서 살아있으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면 새로운 모습을 갖고 있는 종교의 면모를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논의는 자연스럽게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의미를 주고 있으면 종교적 수행이라는 측면을 지니고 있는 네오샤머니즘에 논의했다. 사실 네오샤머니즘의 장점은 엘리아데의 한계가 될 것이고, 반대로 엘리아데의 장점은 네오샤머니즘의 문제점을 노정하게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네오샤머니즘에 대해 평가할 수밖에 없다.


  2) 네오샤머니즘

네오샤머니즘은 몇 가지를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네오샤머니즘은 엘리아데의 기여와 같이 샤머니즘의 보편성을 강조하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시대적,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 현대 사회에서까지 적용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샤머니즘의 출현이라는 면에서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그 한계에 대해 평가해보고자 한다. 첫째, 네오샤머니즘의 정의에 관련된 문제이다. 물론 이 글에서 지칭되는 네오샤머니즘은 북미를 중심으로 하는 현상을 지칭하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네오샤머니즘에 정의와 논의는 네오샤머니즘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을 갖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네오샤머니즘이라는 용어에 대한 학계의 합의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부산대학교의 양민종 교수는 네오샤머니즘을 소비에트 이후에 시베리아 지역의 샤머니즘의 재형성 또는 재건을 지칭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용어의 혼동은 네오샤머니즘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학계에서 통일된 언어의 사용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네오샤머니즘이 북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상으로 한정을 짓던지 아니면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샤머니즘의 재형성을 지칭하는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거듭 밝히지만 이 글에서는 북미지역을 중심으로 한 네오샤머니즘을 택했는데, 일단 자료 면에서, 접근성 면에서 용이했기 때문이라고 밝혀둔다.  

둘째, 서구 편향적이라는 문제점이다. 엄밀히 말해 북미 지역 편향적인 네오샤머니즘은 서구인들의 관심에서 시작된 것으로 매우 서구적인 샤머니즘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서구적인 입맛에 맞는 샤머니즘과 동양적인 사회적 삶에 맞는 샤머니즘의 차이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한국의 무당의 경우 표준화가 이루어져 지역적인 특색이 점점 사라지는 등의 문제점을 나타내고 있지만 적어도 공동체적 관계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일정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에 반해  북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네오샤머니즘은 철저히 개인주의적인(individual) 관심과 요구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특히 내적인 지혜나 목소리를 강조하면서 개인적인 영과의 소통(communication)을 강조하는 것은 자칫 공동체성을 상실함으로써 한편으로 샤머니즘의 종교적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직접적인 참여관찰이 갖고 있는 한계점이다. 네오샤머니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카스타네다, 마이클 하르너(Michael Harner), 빅터 산체스(Victor Sanchez) 모두 참여관찰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샤먼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인디언의 타자성에 대해서 그들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변화되었다고 말했다. 참여적 관찰을 통해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으면 현상의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나 과도한 참여관찰 역시 대상을 이해하는데 참여자의 편견과 오해가 개입될 여지가 분명하게 있다. 특히 카스타네다의 경우는 그가 쓴 책의 많은 예들이 개인의 창작에서 비롯된 것임을 의심받기도 했다. 그리고 지혜를 전수한 돈 주앙이 실제 인물이냐 하는 반박자료들이 수두룩할 정도로 사실성이 의심받고 있다. 그래서 가공의 인물을 통해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만큼 참여관찰이 갖고 있는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은 문제점을 네오샤머니즘이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네오샤머니즘의 역할과 공헌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큰 공헌은 무엇보다도 샤머니즘을 대중화시켰다는 점에서 분명하게 남다른 족적을 남겼다고 할 것이다. 4. 나오는 말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연구와 네오샤머니즘은 각각 다른 영역에서 기여를 했다. 엘리아데의 경우는 치밀하고 방대한 학문적 업적으로 인해 학자들과 전문가 집단에게 수용되어졌다. 네오샤머니즘의 경우는 샤머니즘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 이 둘이 영역이 분리되어져 있고,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1960년대라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보편성’이라는 양상에서 보면 공통분모가 있기도 하다. 이 글은 두 축을 중심으로 1960년대 이후의 샤머니즘의 연구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물론 기여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엘리아데의 샤머니즘 연구는 보편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샤머니즘의 설명에 부족함을 드러냈고, 무리한 적용도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리고 네오샤머니즘 성향의 학자들은 ‘참여’와 ‘경험’을 강조하다 보니까 참여자의 편견과 오해, 심지어 창작까지 하는 문제점을 노출하였다. 그러므로 이 양자 모두 완벽하게 샤머니즘을 설명했다고는 할 수 없다. 이와 같은 한계와 문제를 안고 있지만 1960년 이후 샤머니즘의 대중화와 편견 극복에 많은 공헌을 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연구의 방향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쉽게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이 양자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면 매우 종합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물을 양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