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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회학 글들

종교사회학에서의 '강한 프로그램'

"The Emerging Strong Program in the Sociology of Religion"를 읽고

 

박사과정 

 

1. 종교사회학 연구의 위기상황인가? 아니면 새로운 경향으로의 방향전환인가?

지금의 종교사회학 연구는 '다시 생명력'(vitality)을 얻은 시대로 진입을 한 것인가? 아니면 '위기의 상태'(a state of crisis)로 진입한 것인가? 또는 스스로를 '정의하기 어려운 이행국면'(ill-defined transition phase)에 빠져있는 것일까? 물론 각각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현재의 상태에 관한 진단을 달리할 것이다. 종교사회학은 한 때 '교구사회학'(parish sociology)이라는 비판을 들었지만, 그래도 양적인 면, 즉 연구기금이나 연구자들이 넘쳐났던 시기를 보냈다. 그리고 다시 다양한 분야에서 종교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들이 학제사이를 넘나들며 연구들 한창 진행 중에 있다. 어떻게 본다면 교통정리가 절실한 혼란의 시기이기도 하고, 또 달리 보면 과거의 관심을 다시 회복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종교사회학 관심이 점점 늘어나는 시기에 나름대로 상황을 정리해야할 필요성을 누구나 느끼게 된다. 그래서 현재의 종교사회학을 가늠해보고, 내일의 방향을 조심스럽게 예측하는 논문이 바로 데이비드 스마일드(David Smilde, 이하 스마일드)교수의 논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종교사회학의 현재 트랜드를 '강한 프로그램'의 등장(the emerging of strong program)에 있다고 보았다. 즉 과거 종교사회학이 유럽 중심의 '옛 패러다임'(old paradigm)에서부터 '새로운 패러다임'(new paradigm)으로 대치되었던 것처럼, 이젠 새로운 패러다임도 현존하는 연구들 사이에서 효용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최근 많은 논문이 발표되고 있고, 관심이 집중되는 연구 경향이 바로 '강한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위의 상황을 좀 더 부연설명하자면 이렇다. 옛 패러다임 학자들은 의미적 우주(meaningful universes)의 구성과 이탈한 신앙이 신앙적 타당성(the plausibility of deviant beliefs)을 복원하는 측면에 집중했다. 반면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장한 학자들은 종교들이 그들의 신자들에게 하고 있는 것에 집중한다. 이를테면 그들은 종교의 참여를 행위의 전략으로 보았다. 설명을 위해 스마일드는 이런 예를 든다. 여성들이 어려운 관계에 있는 자신들의 배우자에 대한 부부의 헌신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보수적인 종교에 참여하는 것들이 일종의 행위의 전략인 것이다. 즉 종교는 여성들에게 자신들의 보수적 가치를 유지케 하도록 도왔던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종교사회학 연구에 활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지금도 물론 현재의 경향에 잘 부합하지는 않지만 계속적으로 핵심적 포커스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후에 새로운 패러다임은 그들의 이론에 반대되는 도전을 받게 된다. 그것은 소위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을 주장하는 일군의 학자들이었다. 합리적 선택을 주장하는 연구가들은 종교다원주의가 종교적 참여를 감소시키기 보다 증진시킨다는 것에 반박을 한다. 그들은 그러면서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세속화 이론'이라는 것을 제시하게 된다.

합리적 선택, 또는 세속화 이론 역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크리스천 스미스(Christian Smith)의 말처럼 "종교를 통해 사람들이 목적을 어떻게 성취하는가라는 질문에 집중하는 것은 인간적 동기에 대한 설득력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이들은 인간에게 있어서 목적성취가 아니라 종교가 더 중요한 차지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전혀 설명하기 못한다." 스마일드는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면 이제 다른 어떤 연구가 시작되지는 않았는가?" 그 연구를 "강한 프로그램"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이런 경향의 윤곽과 함께 하부-학제(the sub-discipline)의 특별한 상황을 통해 그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한다.

 

2. 30년간의 종교사회학과 종교사회학의 연구에서 강한 프로그램의 등장

스마일드는 지난 30년 간 소위 종교사회학 연구의 중요한 저널들의 논문을 분석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려고 한다. 그가 꼽은 저널은 일반적 사회학 저널 3, American Journal for Sociology(AJR), American Sociology Review(ASR), Social Forces(SF), 종교사회학 저널 2, Sociology of Religion(SR), the Journal for the Scientific Study of Religion(JSSR)등 이었다. 그는 이 저널들에 실린 논문들을 분석한다. 먼저 종교사회학과 관련된 논문의 편수는 기대와 달리 줄지 않았으며, 오히려 최근 5년 동안은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변동에서 있어서 종교를 독립변수로 보는 '종교적 과정'(이하 RP: Religious Process)과 사회의 종속변수로 보는 '사회적 과정'(이하 SP: Social Process)에 관련된 논문 숫자를 또한 살펴본다. 저널의 30년 개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논문 편수가 RPSP보다 물론 적었다. 하지만 최근 5년 동안은 오히려 RP에 관련된 논문의 숫자가 SP보다 두 배 이상 많아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결과들은 최근 드러나는 종교사회학 연구의 뚜렷한 경향을 보여준다. 즉 강한 프로그램에 관련된 종교사회학 연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앞으로 계속 늘어 날 것임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앞에서도 간략하게 언급했지만, 강한 프로그램은 문화의 사회적 구성(the social construction of culture)이 아니라 사회적 실재의 문화적 구성(the cultural construction)에 중심을 둔 연구를 말한다. 또한 강한 프로그램를 중심에 둔 사람들은 문화적 사회학(the cultural sociology)이라고 말하지 결코 문화의 사회학(the sociology of culture)라고 하지 않는다. 즉 문화적 사회학에서는 문화(여기에서는 문화이지만 종교로 본다면 종교도 마찬가지이다)를 자율적, 독립변수로 다룬다. 하지만 문화의 사회학(또는 '약한 프로그램':weak program)은 문화를 의존적이며, 종속변수로 여긴다. 최근 종교사회학 연구는 분명히 종교를 종속변수가 아닌 자율적인 독립변수로 여기면서 저술되는 논문의 숫자가 훨씬 많다. 즉 종교는 다른 것으로 환원되어질 수 없는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현상인 것이다. 그래서 위에서 언급한 RP라고 지칭된 연구는 종교가 독립변수임을 분명하게 한다.

또 집고 넘어갈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언급했다시피, 종교를 독립변수로 본 연구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먼저 살펴 볼 것은 저널에 실린 논문에 대한 사회-가치평가 결과(socio-evaluative finding)이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즉 단순히 편수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종교를 다룬 논문들 안에서 긍정적인 사회-가치평가 결과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같이 나타내주고 있다. 소위 '-종교적 성격'(pro-religiousness)을 지닌 논문의 편수도 종교를 독립변수로 보게 되면서 같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미국의 부시정권 시기, 로만 가톨릭의 소아-성애적 스캔들이 일어날 때와 같은 경우는 예상대로 친-종교적 성격이 일시적으로 하락세가 보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그 숫자는 꾸준히 늘어났다.

둘째 '주제 집중'(thematic concentration)의 문제를 스마일드는 또한 살펴본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전 세계적 종교적 근본주의의 성장, 비서유럽계 이민자들의 증가과 같은 사회적 변화 때문에 이와 더불어 종교사회학의 연구주제들도 매우 다양화 되었을 것이라고 기대를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미국의 종교사회학 상황이라는 것을 먼저 염두해 두어야 한다. 하지만 이 바램과는 다르게, 주제는 집중화되는 현상을 보였다. 특히 전통적 주제들, 기독교 그 중에서도 개신교에 관련된 주제로 집중되었다.

셋째 스마일드는 연구비의 출처는 종교사회학 연구에 과연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살펴본다. 물론 기대하듯이 종교사회학에 관련된 연구기금은 계속 증가했다. 사적인 연구비 지원도 늘어났지만 종교적 조직들에서의 연구기금들도 두드러지게 증가되었다. 연구기금과 종교를 독립변수로 보는 것과는 어떠한 상관관계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종교적 배경을 둔 연구기금과 사회-가치평가 결과, 즉 종교를 친종교적 성격으로 보는 것과는 놀랍게도 관련이 없었다. 즉 객관적인 연구수행이 연구기금을 받으면서도 충분히 가능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과거의 종교사회학 연구가 '교구사회학'이라는 오명을 가졌던 것과는 대비되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3. '강한 프로그램'은 과연 종교사회학의 '새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스마일드의 이런 연구논문 발표는 분명히 종교사회학 연구 경향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 연구 경향은 한마디로 "강한 프로그램"의 등장과 연구 논문의 뚜렷한 증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강한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종교를 자율적인 독립적 변수'로 여긴다는 점이다. 종교가 독립변수로 인식되면서 종교사회학 연구는 종교에 더 천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거기다가 하부-학제들 사이에 종교를 중심에 두고 다른 주제들을 같이 연구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진행될 수 있었다. 덕분에 종교사회학 논문의 편수도 증가 추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적어도 내 생각은 종교사회학의 연구의 폭이 넓어졌고, 다양한 학제가 연구가 가능하게 되는 긍정적인 결과도 같이 가져오게 했다. 이런 면에서 종교사회학의 연구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강한 프로그램의 주장을 전적으로 동의하며, 앞으로 계속 그 방향을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쉬움이 조금은 남는다. 그 아쉬움에 대해 한 일화를 소개하면서 발제를 마칠까 한다.

언젠가 한번은 누군가 내게 물을 적이 있다. 무엇을 공부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그때에 나는 "종교사회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 때에 그분, "종교는 뭐고 거기다가 사회학을 덧붙여 연구한다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지금 기억컨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설명을 했다. 하지만 그분은 끝내 '종교와 사회학'이라는 두 갈래 길로 계속 달렸지 '종교사회학'이라는 종합을 이루지는 못했다. 그것은 아직도 내게는 당혹스러움으로 기억되고 있다. 과거 종교사회학은 '공민종교론'하면 로버트 벨라(Robert N. Bellah), '세속화 이론'은 피터 버거(Peter L. Berger), '종교시장경제 이론'은 로드니 스탁(Rodney Stark), 보이지 않는 종교는 토마스 럭만(Thomas Luckmann)과 같이 떠오르는 이론과 이름이 있었다. 종교나 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다 한 번씩은 거쳐 가는 대단한 학자들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의 이름을 대면 쉽게 내가 무슨 공부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새 우리는 그런 거대이론들을 잃어 버렸다. 물론 최근에 탈세속화(de-secularization)과 같은 이론들이 유통되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여기에 고민이 있다고 하겠다. 과연 '강한 프로그램'이 과거 옛패러다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움직였던 것처럼 과연 새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과연 거대이론처럼 특징적인 종교사회학 연구를 제시할 수 있을까? 아직 고민은 남아있다. "종교사회학은 과연 무엇을 하는 학문이지?" 새 패러다임을 찾기 전까지 이 질문의 답변은 유보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