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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컬럼

"위기가 아니라 ‘창조적인 파괴’일 따름이다!"


 한국 사회에 최근 ‘9월 괴담’이라는 것이 회자되고 있는 듯 하다. 올해 9월에 IMF에 버금가는 경제대란이 올 것이라는 것이 그 괴담의 주된 내용이다. 이에 부응하듯이 8월 들어 한국 외환시장의 환율이 상한선 없이 폭등하고 있다. 2008년 9월 3일 현재, 달러당 1148.5원까지 환율이 치솟은 상태이다. 여전히 미국 달러가 강한 강세를 보이고 있어서 일부 환율 전문가들은 1200원도 장담 못하는 상황에까지 몰린 듯 하다고 경고한다.이에 따른 수출 전선에 적신호가 켜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여기에 사회불안도 한층 가중된 모습이 보이고 있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스님들이 이명박 정부의 친기독교적 성향 코드인사와 정책 수립에 문제 삼고 나서며 거리로 10만의 인파가 쏟아져 나왔다. 특별히 경찰청장인 어청수 씨가 지시했다고 하는 지관스님의 불심검문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듯하다. 이뿐만 아니다. 북경 올림픽으로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 보였던 이념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원정화 고정간첩 사건, 연세대 명예교수인 오세철 교수에 대한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에 대한 국가보안법 적용 문제로 한국의 학계는 불난 호떡집처럼 요란하다. 정말이지, 인터넷을 통해 전달되어 오는 한국 사회에 관한 소식은 9월 괴담이 사실처럼 들려진다. 그래서 일말의 불안감마저 감돈다.

 언젠가, 미래학자이자 경영학의 거두인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는 혁신을 역설하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3년에 한 번씩은 모든 관행을 재검토하고 상황에 적합하지 않은 모든 것은 폐기해야 한다." 피터 드러커는 그의 유고작과도 같은, “마지막 통찰”에서도 ‘혁신(Innovation)의 전도사’답게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말한다. 드러커는 또한 경제학자 슘페터(Joseph A. Schumpeter)가 주장한 “창조적인 파괴”라는 개념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드러커에 의하면 창조적인 파괴를 통해서 파괴와 창조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혁신을 일구어 낼 수 있으며, 새로운 창조를 만들어내는 개인과 기업만이 21세기의 승리자로 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 사회는 IMF 이후에, 미래산업으로의 진입을 위해 부담이 되는 여러 가지 산업들을 대대적으로 정리 했다. 그리고, 미래 중점 육성산업을 중심으로 한국 산업 전반을 타의반 자의반으로 재편해야만 했다. 그에 따른 결과가 IMF 조기 졸업과 성장이라는 상징적인 성과들을 산출해내기도 했지만, 강한 빛이 내려 쬐이고 있으면 그에 따른 강한 그림자가 생기듯이, 한국 사회에도 명과 암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아직도 산적한 고학력 실업문제와 부의 편중, 즉, 부익부 빈익빈의 이원적 구조가 뚜렷이 나타나면서 잠재적 사회적 갈등 요소들이 표면화 되고 있는 실정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은 누적된 사회적 문제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요소들이다. 이러한 파괴적인 요인들이 한국사회를 멍들게 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고국인 한국은 과연 미래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가? 필자는 한국사회가 드러커의 말처럼 “창조적인 파괴”를 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지금은 분명히 아프고 힘든 일들이지만 오천년의 삶의 지혜를 간직하는 우리 민족은 이 위기를 극복해 내리라 누구보다 믿고 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종종 전쟁의 주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다. 시편 24편 8절에,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이시오,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전쟁의 신(Warrior)이라니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수행하시는 전쟁은 파괴하는 바다와 강의 세력이며 동시에 세상을 혼돈케 하는 세력으로 상징되는 "얌(Yam)"이나 “레비아탄(Leviathan)"을 제거하시는 거룩한 전쟁이다. 즉, 혼돈과 파괴를 제어하시고 질서와 평안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전쟁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 여기에 우리의 신앙고백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오랫동안 파괴와 혼돈을 허락하시지 않으신다. 재창조(Re-creation)을 위한 무질서와 혼돈을 용인하시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정적으로 허락한 것이다. 다시 말해, 정해진 시간이 있는 하나님의 의도된 용인에 불구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에, 한국 사회에서 일고 있는 무척 무질서해 보이는 일련의 많은 사건들은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결코 혼돈과 파괴의 영속성을 좌시하시지 않으신다.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 여기에 우리의 희망과 감사가 있다. 우리가 기도해야할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우리의 조국 한반도를 9월의 위기로부터 구원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