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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컬럼

"영성의 시대, 바른 영성적 가치관을 위하여"


뉴에이지 뮤브먼트’(New Age Movement)를 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지금은 별자리 중에 물병자리’(Aquarius) 시대인데, 물병에서 물이 흘러 나오는 상징처럼 새로운 영성이 물병자리로부터 부어지는, 소위 새로운 영성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말이다. 그들의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새로운 형태의 종교집단이 출현하고 있다 점은 새겨 들을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들이 말하는 뉴에이지의 시대의 영성이라는 것은 얼마나 범위가 광범위하게 우리 사회에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얼마 전, 한국과 미국의 주요 언론들에 의해 거론된 각각의 두 사건을 통해 현재 지구 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적 문제의 스펙트럼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 가를 살펴보았으면 한다.   

먼저, 한국의 이야기를 하자면, SBS의 시사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영된 스승님 어디로 가시나이까?’(2008 3 22일 방영분)에서 다룬 신흥 명상수련단체의 이야기이다. 이날 방영분에서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명상수련단체 중 하나인, ‘붓다필드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집어나갔다. 이 단체는 소위 영적인 스승이라는 필명 게이트(Gate)’라는 사람을 깨달은 자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 스승이라는 사람은 한국에 사는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에 살면서 온라인을 통해 한국에 알려졌으며, ()치료를 통한 암과 같은 각종 질병치유, 유체이탈, 투시, 축지법, 공중부양 등등 행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취재를 통해 드러나는 실상은 능력을 보여주기는 커녕 카지노를 드나들며 회원들이 보내온 돈으로 수 억대(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도박, 세계에서 몇 대 없는 자동차 구입, 호화여행, 부동산 등등 깨달음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을 통해 사람들을 미혹하며, 돈을 갈취하는 종교사기꾼으로 밖에 볼 수 없는 행동들을 일삼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원들이라는 사람들은 그를 여전히 영적인 스승으로 여기고 존경하며, 또한 보호하며 따른다. 이들은 적어도 현실에는 눈을 감고 감미롭게 들려오는 자극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 속에 게임과 같이 종교생활을 즐긴다. 뭐랄까? 현실과 실재의 괴리라는 거리가 여기에서 적잖이 느껴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대다수의 회원들 중에는 고학력, 고수익 직업자들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종교 사건으로 가장 시끄러운 것은 바로 텍사스에서 일어난 일로 근본주의 몰몬교(Fundamentalist Church of Jesus Christ Latter-day Saints, 이하 F.L.D.S)와 관련된 일이다. 텍사주 경찰에 의하면, 그 단체의 여자 아이로부터 911 걸려 온 신고로 인하여(그 신고내용은 16세 이하의 어린아이를 성적으로 학대하고, 구타했다는 내용이었다.) 텍사스의 경찰이 이 종교단체의 근거지 중에 하나인 , Yearning for Zion Ranch에 들어가 416명의 아이들을 구출하고 안전한 지역으로 보내었다. (다음 사진은 그 컴파운드에 관한 사진이다.)



(아이들을 FBI에  빼앗긴 엄마들의 사진)



이 단체
, Y.Z.R FBI의 수배를 받다가 얼마 전, 일부다처제와 미성년자 성적 학대범으로 체포된 워렌 제프(Warren S. Jeffs)가 영적 지도자로 이끌었던 단체 중에 하나로 그들 역시 일부다처제와 16이하의 미성년자에게 결혼을 강요하여 임신, 출산케 하는 일들을 자행해왔다. 텍사스 주정부와 법원은 어린아이들을 부모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아직까지 법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18세기에서나 있을 법한 가혹한 일들과 낡은 생활습관들이 진보된 나라 중에 하나라는 미국 땅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격리된 공간에서 현대문명을 뒤로 하고 자신들만의 분파운동(Sectarian Movement)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 현대 사회의 가치관과 교육, 문명을 거부하고 극단적인 삶의 방법을 택한 사람들의 비뚤어진 모습이라고 하겠다. 

두 사건은 여러모로 참 대조적이다. 첫번째 일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여 요즘 유행하고 있는 명상수련에 관련된 것이라면, 두번째 사건은 현대문명사회로부터 격리 되어 과거의 가치관을 유지하려는 반사회적 모습 또는 탈사회적 운동이라는 데에서 더 흥미롭다. 이렇듯 종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볼 때에 다양한 형태와 모습으로 계층과 학력을 초월하여 현대사회 안에는 신종교가 출현하며, 또한 쇠퇴하고 있다. 신종교의 출현에는 기존의 종교에 불만이나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데에서 먼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이들 신종교운동은 새로운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접촉점들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일에 주력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그 단체들은 알았고, 그 부분을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는 것이다. 종교사회학자인 로드니 스탁(Rodney Stark)은 통일교와 몰몬교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이들 종교들이 교회나 기존 종교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인간적인 친밀함을 바탕으로 그들을 서서히 자신들의 종교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이런 면에서 인간적인 친밀함을 토대로 아마도 방식을 다를지 몰라도 기본 방식은 비슷하게 공유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과 경향은 종교사회학자나 일부 신학자들이 주장했던 세속화와는 거리가 먼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사회가 현대화되며 발전할수록 종교적인 것, 즉 영성에 대한 욕구와 갈망이 형태만 달리할 뿐 어느 때보다 증대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서 한 가지 다른 특징이 나타나는데, 영적인 것에 대한 갈망이 높은 시기, 그러나 기존의 전통적 질서나 가치관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이 생겨나는 시기임에는 분명하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한국의 인구센서스를 통해 드러나는 종교지형이나 미국의 갤럽조사를 통해 나타나는 종교 지표들은 큰 틀에서는 변화가 그렇지 많지는 않지만, 적어도 종교적인 인구 면에서는 신종교나 뉴에이적인 추구가 약간 증가한 것은 틀림없는 듯 하다.

하지만, 기존의 것, 기존의 질서, 전통 종교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 새로운 종교성을 계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은 오산이다. 중요한 것은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바른 변화가 필요하며, 벗어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른 방향으로의 전환일 것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위와 같은 모습의 새로운 영성이라고 한다면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심하게 말하자면, 이런 흐름들은 인간의 삶 가운데 늘 있어 왔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새로운 영성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영성을 빌미로 종교운동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포장만 다시 했다 뿐이지 그 내용물이라는 것은 과거의 것의 재탕, 삼탕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어찌 새로운 영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영성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욕망, 즉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욕망의 다른 표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른 영성은 무엇일까? 물론 짧은 지면을 통해 기독교적인 영성을 말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한가지만 말하고 싶다. 기독교적 영성은 창세기에 나와있는 아담과 이브의 창조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은 인간과 대화하시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하셨다. , 하나님은 인간과 관계’(Relationship)를 맺기 위해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다. 여기에서 바로 기독교의 영성이 시작된다. 드류대학교(Drew University)의 전도학 교수인 레너드 스윗(Leonard Sweet)은 그의 책, ‘Out of the Question, Into to the Mystery’에서 진정한 신앙이란 이성적인 추구에 의한 질문이 많아 지는 것보다 하나님의 거룩한 신비로 들어 가는 것, 그분과의 관계 회복이라고 말한다.(다음은 아마존닷컴에서캡쳐한 레너드 스윗의 책, Out of the Question, Into to the Mystery’ 표지)



인간은 타락 이후, 하나님과의 관계성은 어그러진 관계, 뒤틀어진 관계를 갖고 있다. 그 관계를 회복을 위해 나 자신을 비우고, 그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셔 들이는 것에서부터 관계회복이 시작된다. 이렇게 자기를 비어가고, 그리스도를 모셔 드리려는 노력을 통해서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 삶의 자리들을 채워 나가게 된다 

우리는 영성의 시대를 살아 간다. 그릇된 영성의 운동이 활발이 전개되는 만큼 동시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활동이 더 깊어지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간다. 성령의 시대를 설파한 피오레의 요아힘(Joachim von Fiore, 1145-1202)은 인류에겐 세 시기가 있는데, 성부의 시대, 성자의 시대, 그리고 성령의 시대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지금을 성령의 시대라고 정의한다. 성령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의 삶을 혼미케 하고 어지럽히는 잘못된 영성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우리의 삶을 늘 새로움으로 채워가시며 진정한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시는 성령의 인도함 가운데 바른 영성적 가치관을 세워나가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시대를 변화시키시는 진정한 새로운 영, 창조의 영이시기 때문이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2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