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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컬럼

"이민 2세대, 한글 교육의 시급성"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존재는 언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지만, 동시에 언어는 존재를 규정하기도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언어는 존재를 주조하는 존재의 거푸집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언어학자인 사피어 워프는 언어는 사유를 지배한다라는 말로 언어가 단순한 말들의 조합이 아니라 개개인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표출된 사유의 반영이며 동시에 뱉어진 언어가 인간의 사유를 주조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언어는 사유를 담는 그릇이자 동시에 사유를 빚어내는 용광로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의 평지설교에서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누가복음 6 45)라고 하셨다. , 입에서 나온 모든 말은 각 사람의 내면 세계의 모습을 보여 주는 단서가 된다고 우리에게 말씀해주신다. 사람 각자의 내면 속에 자라난 영적인 성숙이 언어를 통해 표출되어 진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분명 언어는 분명히 소리로 전달되는 음성신호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 다시 말해 말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사회에서 서로 약속된 언어의 체계를 습득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언어를 통해 존재를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며, 나아가 존재의 의미를 인식하고 주조할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이며 가장 강력한 사유체계의 틀을 얻는 것이다.

필자가 동부에서 공부할 때에 보스톤대학교의 대학원으로 유학 온 남미 한인2세 유학생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미국에 사는 교포들을 보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고 필자에게 말했다. 그 이유는 이랬다. 그가 남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는데 자신의 부모들뿐만 아니라 모든 한인들이 최선을 다해 한국어를 가르치려고 노렸했다는 것이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한국학교를 만들고, 좋은 선생님들을 모시려 무진 애를 썼던 기억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미에 사는 한인 2세들이 거의 완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며 그런 자신들을 부모님들이 무척 자랑스러워 하셨다는 것이다. 오히려 에스파뇰을 잘하는 아이들보다 한국어를 잘하는 2세들을 더 자랑스러워 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자신은 외국에 사는 모든 한인들은 2세들의 한국어 교육에 헌신된 사람들인지 알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무척 놀랐다고 했다. 자신이 자랐던 남미와는 달리 많은 한인 2세들이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부모들 역시 그렇게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더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어린 자녀들이 한국어 보다 영어를 잘하는 것을 은근히 자랑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영어가 세계에서 통용되는 주된 언어이기 때문에 그것을 잘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어를 잊어 버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영어를 잘해야 하는 것은 물론 선택적인 문제가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래서, 영어를 잘하는 자신의 아이들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국어 교육을 등한시 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많은 한인 이민 1세대들이 영어보다 한국어를 편하게 생각하며, 더 나아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말은 곧 삶의 필수적인 언어라는 툴이 약하다는 것은 그만큼 이민지에서의 삶이 고단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민 1.5세대나 2세대들에게 한국어 교육보단 빨리 영어를 습득하기를 바라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의 교육은 천천히 해도 되고 집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대부분이 한국어인데 굳이 한국어를 가르쳐야 하는지 그리고 나아가 부모 자신들이 직접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로 문제는 이런 생각들, 영어를 먼저 배우고 나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배워도 늦지 않다는 환상과 집에서 부모님 간에 서로 쓰는 언어가 한국어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습득할 것이라는 헛된 기대가 한국어 교육의 기회를 늦추게 한다. 이 말은 언어를 집중적으로 습득해야 될 시기의 아이들이 한국어 교육에 전혀 노출되지 않고, 단지 집에서 부모님들이 간간히 쓰는 한국어를 통해서 한국어를 접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과연 부모님들의 기대와 같이 아이들은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것일까?

언어는 사회라는 관계의 망속에 있을 때에만 언어의 어휘력이 확대 재생산 되어진다. 사회라는 구속의 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언어 습득의 당위성과 필요성도 사라지게 된다. 다시 말해, 사회를 통한 배움의 압력과 구속력이 계속적으로 끊임없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배움에 나설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무인도에서 홀로 사는 로빈슨 크루소 같은 사람에겐 언어교육이 별 의미가 없다. 물론, 그가 이미 사회에 속했을 때에 언어의 교육을 통해 사고의 틀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어느 정도 그의 언어가 중요했지만, 그것이 통용되어지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의 부재, 사회의 부재 때문에 그의 언어적 표현의 성장을 정지시키고 나아가 점점 잊혀지게 하고 만다. 쉽게 말해 대화할 상대가 없는데 굳이 언어를 혼자서 써야 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나 접하는 사회 모든 곳에서 쓰이는 언어가 영어인데 별로 필요해 보이지 않는 언어를 부모님과의 대화를 위해서 그들이 시간과 노력이라는 희생의 대가를 굳이 치뤄내며 배우려고 하겠는가? 한국어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더 잘 표현하며 타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언어를 이미 가지고 있는데 한국어가 그들에게 무슨 의미일까? 필자가 만났던 많이 영어권 한인2세들은 이렇게 까지 말한다. “제가 왜 한국어를 배워야 하죠? 단지 제 부모님과 대화하기 위해서 한국어를 배워야 합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자라나는 세대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툴을 얻는 것일까? 이미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의 도구가 아니다. 언어는 인간 존재 자체를 빗어내는 틀이며, 인간의 사유를 주조하는 거푸집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의사소통의 방법을 얻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미국인이며 동시에 한국인으로 자신의 의미와 정체성을 발견하게 하는 사유의 체계를 얻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미국인이며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하게 하는 생각의 틀을 제공하는 것이다. 오 천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한국민족은 유구한 역사 만큼 좋은 문화와 함께 전통,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의 삶들이 축적해온 한국 문화’, 또는 한국문명이라는 거대한 호수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바로잡음을 통해서 얻어진 인간 삶의 지혜인 것이다. 그런 삶의 지혜는 우리의 인식과 혈관을 통해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전수되어져 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혜는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삶의 자양분과 자원이 될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소중한 삶의 토양분들을 등한시해야 하는가? 이 말은 한국인의 문화를 미국에서도 그대로 답습하고 고집하고 살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언어를 통해 이런 삶이 자원들을 잃지 말고 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어 교육은 가장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틀이 될 것이다.

             사실 필자는 오늘 언어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언어 교육에 못지 않게 한국 전통과 문화에 대한 교육도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그렇다면, 언어, 전통, 문화를 어떻게 어디에서 배울 수 있을까? 그것은 간단하다. 한국언어와 문화를 가르치는 곳을 찾아 우리의 아이들을 보내고 배움의 기회를 베풀어야 한다. 라스베가스에는 이 일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헌신한 좋은 한국학교들이 여럿 있다. 하지만, 필자가 말할 수 있는 범위는 필자의 경험과 인식 안에 속한 문제이기 때문에 부득이 필자의 교회가 속한 라스베가스 연합한국학교 밖에 소개할 수 밖에 없음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필자의 교회가 속한 라스베가스 연합한국학교는 한글교육, 예능교육, 전통교육, 예절교육, 인성교육, 효도교육, 신앙교육이라는 7대 교육이념 아래 2여 동안 이 땅에 자라나는 미래의 리더들을 길러내는 데에 헌신하였다. 특별히 이를 위해 기도로 준비하고 헌신한 목사님들과 준비된 선생님들이 한국학교를 세워가는데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라스베가스의 한인 2세 교육이 결코 뒤쳐지지 않았음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사실 필자는 이곳에 오기 전에 미국에서 가장 한글교육이 잘 되고 있다는 보스톤에서의 경험이 있다. 비교하는 것은 바보들의 장난이라지만, 이곳 라스베가스의 연합한국학교 역시 그에 못지 않는 열정과 실력으로 똘똘 뭉친 헌신된 분들의 땀과 눈물이 서려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이런 교육 기관이라면 우리의 아이들의 언어교육과 문화, 전통교육에

           언어학자 사피어 워프의 말, “언어는 인간의 사고나 사유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라는 말을 우리는 유념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아이들을 위해 노력과 시간을 결단하고 한국학교에 보내는 것은 단순히 언어를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투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쩌면 늦었다고 생각하는 지금이 교육의 적기인지도 모른다. 옛말에 모르면서 하지 않는 것보다 알면서 안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힘들더라도 나의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지금의 노력이 더 큰 보상으로 우리의 자녀들에게 다가올 것이라는 기대를 잊지말고 가까운 한국학교에 우리의 자녀들을 보내도록 하자.